심능건
심능건(沈能建, 1752년 ~ 1817년 7월 7일)은 조선 영조의 부마(駙馬)로, 삭녕군수 증 영의정 심정지(沈鼎之)의 4남이자 화령옹주의 남편이다. 본관은 청송(靑松)이고 작위는 청성위(靑城尉)이다.
심능건
沈能建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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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영조의 부마
청성위(靑城尉) | |
신상정보 | |
출생일 | 1752년 |
사망일 | 1817년 |
가문 | 청송 심씨 |
부친 | 심정지 |
모친 | 덕수 이씨 |
배우자 | 화령옹주 |
자녀 | 1남 2녀
심의장 · 이규신의 처 · 이재교의 처 |
능묘 | 화령옹주묘
서울특별시 노원구 |
심능건 沈能建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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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752년 조선 |
사망 | 1817년 7월 7일 조선 |
성별 | 남성 |
국적 | 조선 |
별칭 | 청성위(靑城尉) |
직업 | 부마 |
종교 | 유교(성리학) |
부모 | 아버지 : 삭녕군수 증 영의정 심정지 어머니 : 증 정경부인 덕수 이씨 |
형제 | 심능운(형) 심능원(형) 심능진(형) 심능손(동생) |
배우자 | 화령옹주 |
자녀 | 심의장 - 요절 심의관 - 양자 이규신의 처 심씨 이재교의 처 심씨 |
친척 | 조선 영조(장인) 숙의 문씨(장모) 심택현(증조부) 심규(조부) 심관지(숙부) 심항지(숙부) 홍낙성(고모부) 어석정(고모부) 화길옹주(처제) |
생애
편집1764년(영조 40년) 영조의 서11녀 화령옹주(和寧翁主)와 결혼하여 청성위(靑城尉)가 되었다.
1781년(정조 5년) 장모 숙의 문씨(淑儀 文氏)의 생전 집을 멋대로 팔고 철거하는 바람에 삭직되고 문외출송되었다. 이후, 다시 복작되었다.
1801년(순조 1년) 사은정사(謝恩正使)가 되어 청나라에 다녀왔다.
1803년 책봉 주청 정사(冊封奏請正使)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1805년 종척집사(宗戚執事)가 되었다.
1806년과 1808년 동지정사(冬至正使)가 되어 청나라에 다녀왔다.
1817년(순조 17) 7월 7일 졸(卒)하자, 순조는 "서단(逝單, 부음 단자(訃音單子)) 을 보니 슬픔을 금할 수 없다. 청성위 집에 예장(禮葬)을 전례대로 거행하고, 녹봉을 3년을 한정하여 실어 보내며, 그 아들은 복(服)을 벗는 대로 조용(調用)하라." 하였다.
가계
편집- 11대조 : 심연원 - 영의정 청천부원군(靑川府院君)
- 10대조 : 심강 - 조선 제13대 명종의 국구, 청릉부원군(靑陵府院君) 영돈녕부사 증 영의정
- 9대조 : 심의겸 - 서인의 초대 영수, 병조판서 청양군(靑陽君)
- 8대조 : 심엄 - 옥과현감 증 영의정 청천부원군(靑川府院君)
- 7대조 : 심광세 - 홍문관 응교 증 이조참판
- 6대조 : 심은 - 증 이조참판
- 5대조 : 심약명 - 함창현감 증 이조판서
- 고조부 : 심속 - 증 영의정
- 증조부 : 심택현(沈宅賢) - 이조판서 좌참찬 판돈녕부사
- 증조모 : 정경부인 전주 이씨
- 조부 : 심규(沈?) - 해주목사 증 좌찬성
- 조모 : 증 정경부인 경주 김씨 - 영의정 김흥경의 딸
- 숙부 : 심관지(沈觀之) - 병조참판, 오위도총부 도총관
- 숙부 : 심항지(沈恒之) - 대전시 교육감 심재갑(沈載甲)의 6대조, 대전시장·충청남도지사·행정조정실장·청와대 행정수석·국회의원·국민중심당 대표·자유선진당 대표·지방자치발전위원장 심대평(沈大平)의 7대조, 대한민국 초대 참의원(상원) 법제사법위원장 심종석의 7대조
- 아버지 : 심정지(沈鼎之) - 삭녕군수 증 영의정
- 어머니 : 증 정경부인 덕수 이씨 - 부사 이복해(李福海)의 딸
- 장인 : 조선 제21대 영조
- 장모 : 숙의 문씨
- 고모부 : 홍낙성(洪樂性) - 영의정
- 고모부 : 어석정(魚錫定) - 조선 제20대 경종의 국구 함원부원군(咸原府院君) 영돈녕부사 증 영의정 어유구(魚有龜)의 장남, 경종의 두 번째 왕후 선의왕후의 남동생
참조
편집- 《영조실록》
- 《정조실록》
- 《순조실록》
- 《청송심씨 대동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