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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돌프 티에르

마리 조제프 루이 아돌프 티에르(프랑스어: Marie Joseph Louis Adolphe Thiers, 1797년 4월 15일 ~ 1877년 9월 3일)는 프랑스의 정치인이자 역사가로 프랑스의 제2대 대통령(1871년 2월 17일 ~ 1873년 5월 24일, 제3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이다. 프랑스 역사상 두 번째로 선출된 대통령이며 대통령이 되기 이전에는 프랑스의 총리(1836년 2월 22일 ~ 9월 6일, 1840년 3월 1일 ~ 10월 29일)를 역임했다.

생애편집

마르세유 근교에 위치한 부크벨레르(Bouc-Bel-Air) 출신이다. 엑스 마르세유 대학교를 졸업한 이후에 변호사로 근무했다. 부르봉가의 독재 정치를 비판한 역사서인 《프랑스 혁명사》를 저술했다. 1830년 7월 혁명을 계기로 샤를 10세 국왕이 추방되면서 부르봉 왕조가 붕괴되었다. 티에르는 오를레앙가 출신인 루이 필리프 1세를 국왕으로 옹립했고 재무부 차관, 내무부 장관, 총리로 활약했지만 프랑수아 기조와 대립하게 된다.

1848년 프랑스 2월 혁명을 계기로 오를레앙 왕조가 붕괴되면서 나폴레옹 3세를 지지했다. 나폴레옹 3세 시대에는 정치인으로 활약했지만 1851년 나폴레옹 3세 국왕이 일으킨 쿠데타로 인해 프랑스에서 추방당하고 만다. 1852년 나폴레옹 3세 국왕으로부터 귀국을 허락받으면서 프랑스로 귀국했다. 귀국 이후에는 나폴레옹 3세로부터 자신을 보좌해 줄 것을 요청했지만 티에르는 이를 거절했고 집필 활동에 전념하게 된다.

1869년 2월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을 계기로 정계에 복귀했으며 보르도 국민의회로부터 행정장관으로 임명되었다.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 나폴레옹 3세가 프로이센 왕국에 패배하면서 퇴위한 이후에는 국방정부의 대표로 임명되었다. 프로이센과의 항전에 나설 것을 주장하는 한편 프로이센의 오토 폰 비스마르크 총리에게는 알자스, 로렌독일 제국에 할양하기로 결정하면서 평화 관계를 수립했다.

프랑스 제3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이후에는 알자스, 로렌을 독일 제국에 할양한 것에 분노한 파리 시민에 의해 파리 코뮌이 수립되었다. 베르사유를 임시 수도로 정한 프랑스 제3공화국 정부는 파리 코뮌과의 전쟁에서 승리했는데 센 강이 붉게 물들었을 정도로 치열했다고 한다.

파리 코뮌의 반란을 진압한 이후에는 프랑스 은행 등으로부터 자금을 받으면서 프랑스의 부흥을 목표로 했다. 그의 지지 기반이었던 왕당파는 1871년 당시에 461석을 차지하고 있었지만 1876년에는 192석으로 격감했다. 1873년 프랑스 국민의회의 의결에 따라 대통령에서 물러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