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내전

1922-23 IRA의 아이리시 프리 국가에서 프로-와 안티-조약 파벌 간의 갈등

아일랜드 내전(Irish Civil War)는 1922년 ~ 1923년에 일어난 아일랜드 자유국을 건국하고 아일랜드를 북아일랜드남아일랜드로 나누는 대신 영국 지배하 아일랜드 자치를 공식적으로 인정받게 한 영국-아일랜드 조약을 지지하는 세력과 반대하는 세력 사이 전쟁이었다.

아일랜드 내전
날짜1922년 7월 28일 - 1923년 5월 24일
장소
결과 조약 찬성파의 승리
교전국

아일랜드 조약 찬성파


지원
영국의 기 영국

아일랜드 조약 반대파

지휘관
마이클 콜린스 
리처드 멀케이
리암 막 코스가르
케빈 오히긴스
리엄 오 레시 
프랭크 에이킨
카헐 브루 
에이먼 데 벌레라
마르키에비츠 백작부인
병력
55,000명 15,000명
피해 규모
800여명 정확한 수 불명
1,000 ~ 3,000 명 사망
12,000 명 체포

배경 편집

조약 편집

아일랜드 독립사  
REPUBLICANISM
 

사건
부활절 봉기
아일랜드 독립 전쟁
영국-아일랜드 조약
아일랜드 내전
단체
신페인
IRA
달 에런

v  d  e  h

아일랜드 독립전쟁 편집

영국-아일랜드 조약은 아일랜드의 독립주의자들과 영국 정부가 1919년 ~ 1921년까지 벌인 아일랜드 독립전쟁에서 비롯했다. 조약은 아일랜드의 32개 군 중에서 26개 주의 자치를 보장하고 아일랜드 자체 군대와 경찰을 인정했다.

많은 독립주의자가 독립된 공화국을 바랐지만 이 조약에서의 아일랜드 자유국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와 마찬가지로 영국 군주를 수장으로 섬기는 대영 제국의 일원이었다. 또 국회의원은 다음과 같은 충성서약을 해야 했다.

나는 ... 법에 의해 세워진 아일랜드 자유 주의 의회에 충성할 것을 진정한 신의로써 엄숙히 맹세한다. 또한 나는 대영제국과 함께하는 공통의 시민권과 영연방 구성국들과의 유대를 위해, 법에 의해 국왕 조지5세 전하와 그 상속자와 계승자에게 충성할 것이다.

조약반대 편집

아일랜드 공화국군의 반대 편집

아일랜드 독립전쟁 당시 영국군에 대항해 싸웠던 IRA대원의 약 70%가 조약을 반대했고 이들은 영국아일랜드간의 공식적인 법적 관계를 완전히 끊고 완전한 아일랜드의 독립을 이뤄내야된다고 주장했다.

6개 카운티의 반대 편집

또한 북아일랜드의 6개 카운티가 자유국 영토에 속하게 되지 않는다는 것에도 반대했다. 조약반대파는 또한 빈부격차 문제보다는 영국에 대한 민족의 독립이 우선이라 생각하여, 영국에 대해서는 비타협적인 태도를 취하고 민족적인 상공인과도 연합하려 하였다.

찬성주장 편집

그러나 조약 지지 세력은 조약을 미래에 있을 완전독립의 발판으로 삼아야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가난한 농민, 노동자 계급을 대변하고 영국과는 타협적인 입장에 있었다.

결과 편집

전쟁은 결국 IRA의 궤멸로 끝이 났다. 이 내전은 아일랜드 사회를 분열시켰고 오늘날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후 IRA는 과격한 소수의 테러조직 형태로 운영되고 여러 가지 폭탄 테러를 일으켰다. 영국으로 남은 북아일랜드 지역의 아일랜드 인들 중에는 종교적으로 아일랜드 성공회 신도가 늘어났다. 내전의 절정은 더블린오코넬 거리에서 벌어진 더블린 전투였다.

영화 편집

켄 로치 감독에 의해 제작된 아일랜드 독립운동과 내전을 다룬 영화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이 2006년 개봉되어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