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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신씨(鵝洲 申氏)는 경상남도 거제시 아주동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아주 신씨 (鵝洲 申氏)
관향경상남도 거제시 아주동
시조신영미(申英美)
집성촌경상북도 의성군
주요 인물신지제, 신달도, 신열도, 신홍망, 신응태, 신진욱, 신초식, 신치구, 신경림, 신진수, 신명
인구(2015년)33,710명

역사편집

아주 신씨(鵝洲 申氏)의 시조 신익휴(申益休)는 평산 신씨의 시조인 신숭겸(삼능산)의 12세손으로, 고려 때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문하시랑(文下侍郞)에 오르고 나라에 공을 세워 아주군(鵝洲君)에 봉해졌다고 한다.

조선 순조 때 도와(陶窩) 신정주(申鼎周)가 저술한 『호서기행』에 의하면 1817년(순조 17) 공주의 김노정(金魯定)이 『만성보』를 만들 때 신익휴라는 가공 인물을 평산 신씨의 시조인 신숭겸(申崇謙)과 연계시켜 위조했다고 한다. 조선 영조 때 편찬된 『문헌비고』와 1924년에 발행된 『조선씨족통보』에는 고려 때 아주현의 권지호장(權知戶長)을 지낸 신영미(申英美)가 시조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아주신씨 대종회는 1589년(선조 22) 편찬된 《대동운부군옥》에 아주 신씨가 평산 신씨로부터 분관하였다는 기록이 있는 점, 1666년에 간행된 《호계공유집》에 익휴가 시조로 기록된 사실 등을 들어 익휴를 시조로 삼고 있다. 신영미는 신익휴의 아들이라고 한다.


● 시조 및 본관의 유래

  아주신씨(鵝州申氏)의 발상지는 한반도의 남단에 위치한 큰 섬 거제도(巨濟島)의 한 지역이다.

이 섬의 행정명칭은 거제군(巨濟郡)이었다. 신라 때부터 군으로 불러왔던 큰 고을이었다. 여기에 아주현(鵝洲縣), 송변현(松邊縣), 명진현(溟珍縣)이라는 3개의 지역단위가 있었고,  이 지역단위에서 아주현에는 고려조에 와서 성씨제도가 등장하자 토호세력으로서 처음 성을 갖는 수장이 있었다. 그 수장은 신(申의) 성을 취하였는바 후일 신영미(申英美)로 알려진 바로 아주신씨(鵝洲申氏)의 시조(始祖)였다.  아주신씨의 근원이 아주현의 권지호장(權知戶長) 신영미(申英美)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문헌이 있는데,  영조(英祖) 때 편찬된 문헌비고(文獻備考)와 1924년에 발행된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를 비롯한 아주신씨의 가첩(家牒)에 신영미가 시조로 기록되어 있다. 일각에서 평산신씨로부터 분관(分貫)되었다고 하나 평산의 대동보에 아주신씨가 분적종이라는 기록을 찾을 수 없으며, 서문에 아주신씨와의 관계는 역사적 근거가 없다고 기술하였다. 또한 평산신씨로부터 2010년 아주와는 전연 관계가 없다는 공문도 받았다.

1817년 청주파의 신극조씨가 청주의 김노정이가 제가의 선대세계를 가지고 있는데, 이중에 익휴 이상의 아신 조상이 있다고 의성에 통지하므로 읍.귀 양파에서 각 2명씩 뽑아 각기 대표를 선출하여 귀파 도와공 신정주 읍파의 우암 신치교로 이를 조사하게 하였었다.

한 달여 머물며 확인한 결과 도와공은 학식이 풍부한 선비로서 근거없는 조작임을 모두 공감하고 돌아와 <호서기행록>을 작성하여 허위임을 밝혀 그 자료가 지금까지 남아 있다. 그 후 안동보 제작자가 의성의 읍.귀 양파에 족보를 함께할 것을 제의하였으나, 평산과 연결하고 익휴를 시조로하는데 반대하여 안동파보로만 발간되었다. 또한,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아주신씨에 보내온 공문에 의하면, <화해사전>은 진서가 아니며 시조 신익휴란 인물도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에서 찾을 수 없는 가공 인물임을 확인해주고 있다.

본관편집

아주(鵝洲)는 경상남도 거제시에 속한 지명이다. 본래 거로현(巨老縣)인데, 신라 경덕왕 때 아주현(鵝洲縣)으로 고치고, 거제군(巨濟郡)의 영현(領縣)을 삼았다. 《세종실록지리지》에 아주(鵝洲)의 성으로 신(申)·문(文)·갈(葛)·조(曺) 4성이 기록되어 있다.[1] 현재 경상남도 거제시 아주동이라는 지명으로 남아 있다.

인물편집

  • 신우(申祐) : 신영미의 현손. 고려 충혜왕 때 전라도 안렴사(按廉使)를 지냈으며, 효자로서 의성(義城)에 정문과 효자비가 세워졌다.
  • 신원록(申元祿, 1516년 ~ 1576년) : 신우의 7세손. 참봉(參奉) 신수(申壽)의 다섯 아들 중 셋째로 태어났다. 연로한 부모를 봉양하여 정려(旌閭)가 세워졌다. 의성의 장대서원(藏待書院)에 배향되었다. 저서에 《회당집》이 있다.
  • 신지제(申之悌, 1562년 ~ 1624년) : 신우의 9대손. 1589년(선조 22) 증광문과에 갑과로 급제하고, 1601년 정언(正言)·예조좌랑, 1602년 지평(持平) 등을 거쳐 1604년 세자시강원문학(世子侍講院文學)·성균관직강(直講)을 역임하였다.
  • 신적도(申適道, 1574년 ~ 1663년) : 신원록의 손자. 아버지는 군자감주부(軍資監主簿)‧선무랑(宣務郞) 신흘(申仡)이다. 1606년(선조 39) 진사시에 급제한 후 상운도찰방(祥雲道察訪)‧건원릉참봉(健元陵參奉)을 지냈고, 조봉대부(朝奉大夫)에 이르렀다. 저술로는 『호계선생문집(虎溪先生文集)』이 있다.
  • 신달도(申達道, 1576년 ~ 1631년) : 신적도의 동생. 1623년(인조 1) 정시 문과(庭試文科)에 장원급제하고, 1629년 사헌부장령(掌令)이 되었다. 후에 도승지에 추증되었다.
  • 신열도(申悅道, 1589년 ~ 1659년) : 신달도의 동생. 1624년(인조 2) 증광 문과에 급제하고, 1647년 사헌부장령(掌令)을 거쳐 능주목사를 지냈다. 저서로는 『선사지(仙槎志)』와 『문소지(聞韶志)』가 있다.
  • 신홍망(申弘望, 1600년 ~ ?) : 신지제의 아들. 1639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지평·정언·풍기군수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는 『고송집(孤松集)』이 있다.
  • 신진욱(申鎭旭, 1924년 ~ 2014년) : 제8·14대 국회의원
  • 신치구(申致求, 1932년 ~ ) : 제23대 국방부 차관
  • 신경림(申庚林, 1936년 ~ ) : 시인
  • 신진수(申鎭洙, 1942년 ~ 2017년) : 제11·13대 국회의원
  • 신명(申洺, 1946년 ~ ) : 제17대 국회의원
  • 신성호(申性浩, 1956년 ~ ) : IBK투자증권 사장

과거 급제자편집

아주 신씨는 문과 급제자 10명을 배출하였다.[2]

고려 문과

신인보(申仁甫)

문과

신규(申圭) 신달도(申達道) 신류(申塯) 신면주(申冕周) 신면횡(申冕鐄) 신열도(申悅道) 신정모(申正模) 신지제(申之悌) 신홍망(申弘望)

무과

신숙반(申叔䈲) 신응화(申應墷) 신해창(申海昌)

생원시

신각(申慤) 신경서(申景瑞) 신광운(申光運) 신광진(申光震) 신규(申圭) 신달도(申達道) 신덕채(申德埰) 신덕함(申德涵) 신도삼(申道三) 신력(申櫟) 신렴(申濂) 신로(申櫓) 신류(申塯) 신면조(申冕朝) 신명구(申命耉) 신봉조(申鳳朝) 신요(申垚) 신정진(申鼎辰) 신준호(申俊虎) 신중모(申重模) 신진구(申震龜) 신천걸(申天杰) 신천달(申天達) 신택수(申宅遂) 신필병(申必炳) 신한기(申漢箕) 신한도(申漢圖) 신한주(申漢柱)

진사시

신덕함(申德涵) 신면직(申冕直) 신열도(申悅道) 신적도(申適道) 신채(申埰) 신한운(申漢雲) 신홍망(申弘望)

인구편집

  • 2000년 27,843명
  • 2015년 33,710명

각주편집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