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영

안상영(安相英, 1938년 11월 18일 ~ 2004년 2월 4일,[3][4] 출생)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이자 행정관이며 전 해운항만청장, 제25대 부산직할시장(관선), 제31~32대 부산광역시장(민선 3~4기)을 역임하였다.

안상영
安相英
출생1938년 11월 18일(1938-11-18)
전라남도 광양시[1][2]
사망2004년 2월 4일(2004-02-04) (65세)
대한민국 부산광역시 사상구
성별남성 위키데이터에서 직접 편집
국적대한민국
학력서울대학교 토목공학과
직업광역단체장, 정치인, 공무원
경력부산광역시장
한나라당 전임위원
부모김미임(모)
배우자김채정
자녀1남 1녀
종교기독교
의원 선수
정당무소속
웹사이트공식 사이트

생애편집

관료 생활편집

성지국민학교, 부산중학교, 부산고등학교를 졸업한 후[5] 서울대학교 토목공학과에 진학하여 졸업하였다. 1963년 서울특별시청 토목직 7급 공무원 공채에 응시하여 합격하여 관료생활을 하였으며, 서울지하철건설본부 건설차장, 서울시청 도로국장, 도시계획국장을 역임하였다.[5][6] 이때 서울의 강남 개발을 주도적으로 추진하였다. 그 뒤 서울특별시 종합건설본부장으로 한강종합개발과 올림픽대로 건설을 주관하였다.[6]

1988년 관선 부산직할시장에 부임하였다. 관선 시장 재직 당시 부산 앞바다에 인공섬을 건립하는 사업을 추진, 논란을 불러일으켰으며[5][6] 인공섬 개발계획을 추진하다 포기하고 1990년 해운항만청장으로 부임했다.[6] 해운항만청장으로 자리를 옮긴 뒤에도 인공섬 건립에 강한 집념을 보였다.[5] 1992년 해운항만청장에서 물러났다.[5] 그 뒤 한국항만협회 고문, 벽산건설 부회장 등을 지냈으며.[5] 한강개발 당시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과의 인연으로 1996년 대우그룹 계열사인 부산매일신문사 사장에 임명되기도 하였다.[5] 이후 2년간 부산매일신문사 사장을 지냈다.[6]

정치 활동편집

1998년 지방선거에서 뇌물수수 혐의로 불구속 수사를 받던 당시 문정수 시장을 당내 후보경선에서 누르고 출마, 선거에서 무소속 김기재 후보와 접전 끝에 부산시장에 당선되어[5] 1998년 ~ 2002년 민선 2기 부산광역시장을 지냈다. 이로써 부산광역시 역사상 유일하게 관선 직할시장과 민선 광역시장을 모두 지낸 시장이 되었다. 1998년 7월 제3회 부산국제영화제 명예조직위원장, 1999년 12월 초대 부산영상위원회 위원장 등을 거쳐 2002년 자치단체장 선거에 한나라당 공천으로 출마하여 당선, 7월 민선 3기 부산광역시장에 취임하였다.

2003년 10월 진흥기업 박모 회장으로부터 1억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기소되었으며 10차례 공판을 치르면서 무죄를 주장하였다. 2002년 6월 지방선거 당시 부산 동성여객(현 삼성여객) 등으로부터 3억원을 받은 혐의가 추가돼 검찰의 추가 조사를 받기도 하였다.[6]

수사 중 자살편집

금품수수혐의로 복역 중이던 그는 2004년 2월 4일 부산구치소에서 목을 매 자살하였다. 자살 동기는 모멸감 때문이었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특수2부 부부장검사이던 우병우부산지방검찰청에서 구속돼서 재판을 받고 있는 안상영을 조사하겠다며 1월 29일 부산구치소에서 서울구치소로 이감하면서 하루 종일 부르지 않고 구치감에 방치했다. 서울구치소로 돌아간 안상영부산구치소로 이감된 뒤 하루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우병우가 징계 대상에 거론되었지만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장이던 서영제가 강하게 반발하면서 기관경고로 그치게 한 것과 관련하여 당시 상황을 잘 아는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안상영 시장이 모멸감을 느껴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7]

평가편집

고집과 뚝심 때문에 ‘개발시장’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자기관리를 철저히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5]

안상영 유서 논란편집

안상영 유서는 안상영이 죽은 다음날 유족이 공개했다. 공개하지 못할 부분은 삭제하고 공개했다. 그런데 5년이 지난 2009년 5월 말에 안상영 가짜 유서가 출현했다. 그게 삽시간에 퍼져서 노무현문재인이 안상영 자살의 주범으로 지목됐다.

진짜 유서 내용편집

2004년 2월 4일 안상영이 사망하자 2월 5일 유족이 유서와 일기를 공개했다. 공개한 유서에는 정치적인 내용은 없고 가족에 대한 미안함 등 개인적인 내용이 주류였다. 진짜 유서는 이미 언론에 내용이 공개되어 있다. 아래 오마이뉴스와 동아일보, 한겨레신문, 연합뉴스에 실린 유서 내용이다.

고 안 시장 유서 공개 "번민의 시간 길어지면 둘 다 파멸" 2004.2.5 오마이뉴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167248

故안상영 부산시장 유서 공개 동아일보 2004-02-05 12:32 http://www.donga.com/news/article/all/20040205/8026656/1

안상영 유서 수감고통・가족에 미안함 토로 한겨레 2004.02.05(목) 23:38 http://legacy.www.hani.co.kr/section-005000000/2004/02/005000000200402052338510.html

안상영 시장 유서.일기 내용 연합뉴스 2004.2.5 http://v.media.daum.net/v/20040205022836764

안 부산시장 자살 오래전부터 준비한 듯 2004.2.5. 연합뉴스 http://v.media.daum.net/v/20040205100822438

자살한 安相英 부산시장의 유서와 일기 조갑제닷컴(월간조선 2004년 3월호 보도를 인용) http://www.chogabje.com/board/view.asp?C_IDX=27608&C_CC=AD

안상영 시장 유서 공개 2004.2.5.ytn http://m.news.naver.com/read.nhn?oid=052&aid=0000026223&sid1=&mode=LSD

고 안상영 시장 유서 공개 2004.2.5.ytn http://m.news.naver.com/read.nhn?oid=052&aid=0000026217&sid1=&mode=LSd

가짜 유서 내용편집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안상영 유서는 가짜다. 가짜 유서는 <국민여러분! 사마천의 사기라는 책을 보면~> 또는 <국민 여러분! 저 안상영이는~>으로 시작하는 글이다. 내용은 열린우리당에 입당하라는 노무현의 요구를 거절하자 뇌물을 받았다고 구치소에 수감했고 홀대를 당했다는 내용이다. 두 글은 같은 내용인데 맨 앞단락인 사마천의 사기라는 부분이 있고 없고의 차이뿐이다.(노무현 때문에 죽은 사람들-안상영의 유서 https://m.blog.naver.com/escapx/221508802507 ). 다음은 가짜 유서의 내용이다.


유서(遺書)

국민 여러분!

사마천의 사기라는 책을 보면 고서(古書)에 이르기를 '형벌은 사대부에 이르지 않는다!'라고 했습니다. 이는 사대부의 체면을 살리기 위한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깊은 산에서는 백수의 왕인 호랑이도 우리 속에 갇히게 되면 꼬리를 흔들며 먹이를 구걸하게 됩니다. 협박을 당하고 고통을 받은 결과가 그러한 변화를 가져다 주는 것입니다! 손발을 묶이고 벌거벗겨져서 채찍을 맞고 감옥 속에 쳐박히면, 옥리만 보아도 머리를 땅에 박고 간수나 잡역부에게조차 겁을 먹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때 오히려 자기가 기개를 세우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는 사람은 실상을 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무릇 영웅 호걸들도 당국에 잡혀 감옥 속에 갇히게 되면 자결하지도 못하고 치욕 속에서 살아야 했던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

저 안상영이는 감옥 속 추운 방에서 盧武鉉의 말을 듣지를 않았다는 그 단 한가지 이유만으로 모함을 당하여 치욕 속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아내가 정성스럽게 만들어 준 두툼한 솜옷도 감방 속으로 차입이 되지를 못 하였습니다 모든 명예를 다 버리고 용기도 없이 비겁하게 목숨을 구걸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용기있다거나 비겁하다는 것도 사실 상황의 산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옛날부터 사대부에게 형벌을 내리지 않았던 것은 실로 그 때문이었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고 부모, 처자를 걱정하는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입니다.

저는 절대로 돈을 받지를 않았습니다! 억울 합니다! 제가 盧武鉉의 요구대로 열린우리당으로 입당을 하였다면, 저는 이 추운 감옥 속에 들어오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한나라당에서 추천을 받아 선거를 해서 부산시장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절대로 한나라당을 떠나서 열린우리당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저를 믿고 따르는 부산시민들을 절대로 실망시킬 수는 없었습니다.

저들은 그런 고집을 부리는 저를 서울로 데리고 다니면서 주리를 틀면서 저를 괴롭혔습니다. 사마천의 글 속에서 저 거대한 나라의 형법도 당상관은 감옥 속에서도 대우를 해주었습니다. 저 안상영은 서울구치소에 잡범들 방으로 들어가서 잡범들에게 무수하게 몰매를 맞았습니다.

서울 구치소에서 잡범들 방에 저를 몰아넣고 잡범들에게 몰매를 맞는 그 순간에 저 안상영이는 모든 것이 무너저 버렸습니다. 저 안상영은 생명을 아까워하는 비겁한 자에 불과하지만, 거취만은 분명하게 하려는 사람입니다. 어찌 치욕을 모르고 죄인 노룻만 하고 있겠습니까?

저 盧武鉉이는 그렇게 악독한 人間입니다. 국민들은 절대로 저 위장된 盧武鉉에게 속아서는 안 됩니다! 盧武鉉은 강금실을 시켜서 서울구치소 잡범들 방에서 저를 잡범들을 시켜서 무수하게 구타를 하게 하면서 마지막까지 열린우리당에 입당하라고 몰아부쳤습니다.

盧武鉉이 盧武鉉당인 열린우리당을 창당한 것 자체가 경남과 부산에서 열린우리당을 한 석 이라도 더 당선시키려는 부정한 기획으로 만든 당이기에 저를 부정한 부산시장으로 몰아부쳐 저를 감옥 속에 처넣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 이유는 盧武鉉이 끝까지 저 안상영이를 죄를 물었고 자백을 하게 하였고 마지막까지 열린우리당으로 입당하라고 몰아부쳤던 것입니다.

저는 죽음의 길로 걸어가면서 저 부정한 盧武鉉 정권에 죽음으로 항거합니다. 저는 어둠 속의 감방 속에서 또 하나의 진실된 조국 대한민국 역사의 장래를 진심으로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盧武鉉은 나 안상영이를 죽음으로 몰아갔지만, 저 부정한 정권은 그리 길게 가지는 못할 것 입니다.

서울구치소에서 무수하게 몰매를 맞고 부산구치소로 돌아오니, 부산은 나의 집이었습니다. 국민 여러분 평안 하십시오!

안상영 올림

가짜 유서 생산과 유통편집

다음과 네이버를 통해서 안상영 유서를 검색해봤다. 언제부터 안상영의 가짜 유서가 돌아다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안상영은 2004년 2월 4일 죽었다. 그런데 가짜유서는 5년이 지난 2009년 5월 말에 처음으로 나타난다. 포털사이트 다음에는 2009년 5월 30일 <안상영 부산시장 유서>가 처음 등장한다. 이에 2009.05.31. <유서마저 위조하는 수꼴놈들!> <노무현-고 안상영 부산시장의 유서에 비추어본>이란 글도 올라왔다. 안상영 유서가 조작된 거라는 내용을 담은 <백투더 소스의 필요성>도 같은 날 올라왔는데, 재미있는 건 이 글은 다음 검색에는 5월 31일로 나타나는데 클릭하면 2014년 12월 28일 작성된 걸로 나온다.

안상영 부산시장 (가짜)유서 http://tszmo.tistory.com/6

유서마저 위조하는 수꼴놈들! http://roricon.egloos.com/1912263

노무현-고 안상영 부산시장의 유서에 비추어본 http://hansu0007.egloos.com/9772771

백투더 소스의 필요성 http://m.egloos.zum.com/philsnote/v/4154003

네이버에는 <故 안상영 부산시장의 자살에 대한 의문>이 2009년 5월 29일 노노데모(우리가 만들어가는 대한민국) 카페에 처음 등장한다. 글쓴이는 유서 내용을 소개하지 않고 읽은 소감을 썼는데, '한기가 서린 감옥소에서 잡범들에게 몰매를 맞는 순간 자신은 더 이상은 존재감을 잃었다'는 구절 어쩌고 하는 내용을 보니 안상영 가짜 유서로 추정된다. 그러므로 이미 2009년 5월 29일에는 가짜 유서가 완성돼 유포되고 있었다는 거다. 같은 카페에 <고 안상영 부산시장 유서>가 5월 31일 1시10분에 올라온다. 이 글은 가짜유서를 맨 위에 올리고는 그 밑에 유족이 공개한 유서가 담긴 연합뉴스 기사, psb 기사, 서울신문 기사를 붙여넣기 했다. 가짜유서와 진짜기사를 섞어서 악의적으로 편집한 것이다.

故 안상영 부산시장의 자살에 대한 의문 https://cafe.naver.com/nonodemo/146703

고 안상영 부산시장 (가짜)유서 https://m.cafe.naver.com/nonodemo/148001

결국 다음과 네이버에는 2009년 5월 31일부터 본격적으로 안상영 유서가 등장한다. 그런데 5월 31일 당시의 글에는 가짜 유서라고 반박하는 많은 사람의 댓글이 달렸다. 문제는 날이 지날수록 댓글은 잊히고 가짜유서만 사실인 양 본격적으로 유포되었다는 거다. 지금은 엄청난 양의 안상영 가짜유서가 반문재인.반노무현 블로그와 카페에 게시돼 있다. 특히 보수우파 블로그.카페에 집중해서 계속 도배되고 있다.

가짜 유서 누가 만들었나?편집

안상영 가짜유서가 유포되기 시작한 2009년 5월 31일은 어느 때인가? 바로 노무현 대통령이 죽은 2009년 5월 23일 직후다. 당시는 이명박 정권 때로 박연차 관련 뇌물 수수 혐의로 수사 중 노무현 대통령이 자살했다. 누가 안상영 가짜 유서를 만들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노무현이 죽음으로써 추모하고 기억하고 재조명받는 상황을 싫어하는 무리였을 것으로 본다. 미루어 짐작건대 이명박 측이든 박근혜 측이든 검찰 측이든 보수우파 쪽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안상영이 1월 29일 부산구치소에서 서울구치소로 이감되었고 거기에서 있었던 일이 주내용이어서 최소한 이러한 정보를 아는 사람으로 보인다. 안상영은 부산구치소로 재이감 된 다음 날 자살했다. 가짜 유서의 내용에는 노무현 대통령을 비난할 내용이 수두룩하다. 안상영의 죽음을 노무현 탓으로 돌려서 노무현을 비난하는 것이다. 그래야 노무현 자살의 책임이 있는 이명박과 검찰의 책임이 희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유서가 진짜라면 언론을 탈 만큼 충격적인 내용인데도 신문과 방송에는 전혀 등장하지 않았다. 야당도 안상영 사망 후 가짜유서 내용과 관련해 아무런 이의제기도 하지 않았다. 참고로 우병우의 조사로 인한 모멸감이 안상영 자살 원인이라는 자료도 있다.

가족편집

  • 어머니 : 김미임
  • 부인 : 김채정
  • 자녀 : 1남 1녀

역대 선거 결과편집

선거명 직책명 대수 정당 득표율 득표수 결과 당락
제2회 지방 선거 부산광역시장 31대 (민선 2기) 한나라당     45.14% 558,909표 1위  
제3회 지방 선거 부산광역시장 32대 (민선 3기) 한나라당     63.76% 724,506표 1위  

각주편집

  1. 틀:뉴스 인 용
  2. "한국 지배하는 ‘불멸의 악령’". 시사저널. 1998년 5월 28일. 2014년 7월 14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4년 6월 6일에 확인함. 
  3. "[지방선거 쟁점/토박이 논쟁]김기재-안상영후보 출신공방". 동아일보. 2014년 5월 21일. 
  4. "한국 지배하는 ‘불멸의 악령’". 시사저널. 1998년 5월 28일. 2014년 7월 14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4년 6월 6일에 확인함. 
  5. 토목직 7급으로 출발 '승진가도' 《경향신문》 2004년 2월 4일
  6. 안상영시장은 누구 Archived 2013년 10월 12일 - 웨이백 머신 《조선일보》 2004년 2월 4일
  7. “[Why뉴스] 우병우 민정수석, 사퇴하지 않고 버틸 수 있을까?”. 《노컷뉴스》. 2016년 7월 22일. 

참고 자료편집

전임
강태홍 (1923년)
제25대 부산직할시장
1988년 5월 19일 ~ 1990년 12월 27일
후임
김영환 (1935년)
전임
안공혁
제9대 해운항만청장
1990년 12월 28일 ~ 1992년 4월 20일
후임
강동석
전임
문정수
제31·32대 부산광역시장
1998년 7월 1일 ~ 2004년 2월 4일
후임
(권한대행)오거돈
(권한대행)안준태
허남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