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메뉴 열기

역사편집

양주조씨(楊州趙氏)의 시조 조잠(趙岑)은 고려 때 양주호장(楊州戶長)을 역임하고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에 추증되었다고 한다.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에 따르면 조잠은 조군우(趙君祐)의 손자이며, 조경질(趙景質)의 아들이라고 전한다.

조선 초 조말생이 태종의 측근으로서 병조판서까지 역임하고, 세종 대에도 병판을 8년 여동안 지내는 등 집안을 일으켰고, 집안 대대로 90명의 대과 합격자를 내는 등 명가가 된다. 단, 1453년(단종 1년) 계유정난(癸酉靖難) 때 김종서 일파로 몰린 정평공파와 제학공파는 멸문에 가까운 탄압을 받으면서 그 수가 얼마되지 않는다.

조선 후기 노론 집권 시대, 세도 정치 시대를 지나는 동안 몇 개 집안만이 중앙에 남을 때에도 그 세를 유지했었다. 문과 급제자 90명을 배출하여 인구(2015년 기준 29,631명) 대비 문과 급제자 비율이 높다.[1] 정승이 8명이었고, 홍문관 대제학이 3명이다.

인물편집

조선 왕실과의 인척관계편집

항렬자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