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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스 전보 사견 기념비. 「1870년 7월 13일 아침 9시 10분경」이라고 새겨져 있다.

엠스 전보 사건(EMS電報事件, 독일어: Emser Depesche, 프랑스어: Dépêche d'Ems, 영어: Ems Dispatch)은 프로이센의 군주 빌헬름 1세가 프랑스로부터 받았던 전보를 의도적으로 편집하여 세간에 공표한 사건이다. 스페인 왕위 계승 문제와 얽혀서 불거졌으며 이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

경과편집

스페인 왕위 계승 문제편집

1868년 9월 스페인에서 후안 프림(Juan Prim y Prats) 장군이 쿠데타를 일으키자 정권에 대한 불만이 터져 각지에서도 반란이 잇따랐고 이는 혁명으로 파급되었다. 군의 지지를 받지 못했던 이사벨 2세프랑스 제2제국으로 망명했다. 이후 스페인은 1869년 1월 처음으로 보통선거를 실시하여 의회를 구성한 뒤 헌법을 공포하여 입헌군주제를 도입했다. 하지만 혁명가들 사이에서는 공화정 수립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있어 신정부는 새로운 국왕을 한시라도 빨리 선출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이사벨 2세는 자신의 아들 알폰소 12세에게 양위한다는 뜻을 밝혔지만 스페인 신정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아 왕위 계승 문제가 발생했다. 스페인 신정부는 종교 개혁 이후에도 가톨릭을 신봉하던 호엔촐레른지크마링겐가의 레오폴트 공작(Leopold von Hohenzollern-Sigmaringen)을 염두에 두고 있었고 본가인 호엔촐레른가도 이를 지지했다. 하지만 프랑스는 자국의 동쪽과 남쪽에 호엔촐레른가가 다스리는 국가가 등장하는 것을 경계하여 프로이센에게 번의를 요구했다. 프로이센 국왕 빌헬름 1세와 레오폴트 모두 스페인 왕위에 큰 관심이 없어 7월 12일 레오폴트가 정식으로 왕위를 사퇴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엠스 전보 사건편집

하지만 프랑스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앞으로도 호엔촐레른가가 스페인 왕위를 차지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해줄 것을 프로이센에 요구했다. 당시 빌헬름 1세는 바트엠스에서 요양 중이었는데 프랑스는 이곳에 뱅상 베네디티(Vincent, Count Benedetti)를 대사로 파견해 빌헬름 1세를 알현토록 했다. 하지만 빌헬름 1세는 왕위 사퇴라는 형식으로 이미 양보를 했는데 프랑스가 이와 같은 요구를 하는 것은 무례한 것이라며 거절하고 이 사실을 수상 오토 폰 비스마르크에게 알렸다.

전보를 받은 비스마르크는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할 생각을 하여 내용의 일부를 의도적으로 생략해 무례한 프랑스 대사가 앞으로도 스페인 왕위를 노리지 말 것을 강요했고 빌헬름 1세가 강하게 물리쳤다고 편집했다. 그리곤 이 수정된 전보를 7월 14일 각국의 신문에 공표했다. 프로이센은 프랑스 대사의 무례한 태도와 무리한 요구에 격분했고 프랑스는 자국 대사를 물리친 프로이센 국왕의 태도에 분노하여 양국 간에 적대심이 발생하고 여론은 전쟁까지 요구하게 되었다.

반전 여론이 존재했으나 대세는 전쟁 쪽으로 흘러갔으며 7월 15일 각의를 통해 19일 프랑스가 먼저 선전포고를 하면서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이 일어나게 되었다.

사건에 관해편집

독일의 통일을 위해 프랑스와의 충돌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했던 비스마르크는 사전에 전쟁에 필요한 인프라를 정비하고 프로이센이 선전포고 받았을 경우 중립을 지키거나 협력할 것을 각국으로부터 사전에 약속을 받아냈다. 이러한 점에서 엠스 전보 사건은 비스마르크가 팠던 함정에 프랑스가 속아넘어갔다는 의견이 있다.

프랑스는 독일과 호엔촐레른-스페인에 둘러쌓이게 되는 사태에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했으며 레오폴트가 왕위를 순순히 포기하자 이를 자국의 군사력의 승리라고 과신한 면도 있었다. 하지만 당시 프로이센은 이미 프랑스의 군사력·공업력을 뛰어넘었는데 이를 제대로 직시하지 못했고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을 통해 독일이 통일을 이루게 되었으니 당시 프랑스 황제였던 나폴레옹 3세의 치명적인 외교 실수라고 할 수 있다.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