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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안 김씨(延安 金氏)는 황해도 연안군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연안 김씨 (延安 金氏)
관향 황해도 연안군
시조 김섬한 (金暹漢)
주요 인물 김도, 김자지, 김여지, 김감, 김전, 김근사, 김안로, 김희, 김시, 김개국, 김제남, 인목왕후, 김재찬, 김기수, 김사철, 김사준, 김석기, 김수덕, 김이석, 김원기, 김종운, 김덕주, 김주상, 김용담, 김기선, 김성주, 김빛내리, 김현중, 김수형
인구(2015년) 93,382명

시조 김섬한(金暹漢)은 신라 김알지의 후예로, 고려 명종 때 사문박사(四門博士)를 지냈다.

목차

역사편집

《김씨 분관록》, 《증보문헌비고》등의 문헌(文獻)에 의하면 신라 김알지의 후예인 두 형제가 왕에게 직간(直諫)하다가 오히려 미움을 받아 먼 곳으로 유배되어 형은 북빈경(北濱京. 지금의 강릉)에 살게 되었고, 동생은 시염성(鼓鹽城. 지금의 연안)에 살게 되었다고 한다.

시조 김섬한(金暹漢)은 연안(延安)으로 유배된 아우의 후손으로 고려 명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국자감 사문박사(四門博士)를 지냈다. 그의 상계는 아득히 멀고 기록이 없어 상고할 수 없다. 일설에 가야 왕손이라는 족보에 의하면 연안 김씨는 가야계 후손이라 한다. 후손 김도(金濤)는 고려 공민왕(임인년. 1362)때 문과에 급제하고 밀직제학(密直提學)을 지냈다.

조선조에 들어 김도의 아들 김자지(金自知)와 김여지(金汝知)는 판서를 지냈으며, 김전(金詮), 김근사(金謹思), 김안로가 영의정을 지냈다. 김감(金勘)은 대제학을, 김경사(金敬思)는 광주목사를 지내는 등 조선 시대에 종묘배향공신 3명, 정승 6명, 대제학 1명, 왕비 1명, 문과 급제자 163명을 배출하였다.

본관편집

연안(延安)은 황해도 연백군 일원의 옛 지명이다. 고구려(高句麗)시대에는 동음홀(冬音忽) 또는 시염성(鼓鹽城)으로, 신라시대에는 해고군(海皐郡), 고려(高麗)시대에서는 처음에 염주(鹽州)라 하였으며, 성종조(成宗朝)때 방어사를 두었었다가 현종초(顯宗初)에 방어사를 폐지하고 해주(海州)에 예속시킨 후에 감무(監務)를 두었었다. 고종(高宗)때에 단병(丹兵)을 물리친 공으로 영웅현령으로 승격시켰더니 그 후 현인(縣人) 차송우(車松祐)가 위사공신(衛社功臣)이 됨으로써 복주(復州)로 고쳐 지사(知事)를 두었다. 원종(元宗)때에 또 이분희(李汾禧)가 위사공신(衛社功臣)이 되어 석주(碩州)로 고치고 충렬왕(忠烈王)때에 온주목(溫州牧)으로 승격시켰더니 충선왕(忠宣王) 시대에 목(牧)을 강등(降等)하여 연안부(延安府)로 고쳤다. 조선 태종(太宗)때 도호부가 되면서 경기도에서 황해도로 이관되었다. 조선 말에 연안군(延安郡)으로 고쳤는데 1914년 배천군과 평산군의 괘궁(掛弓)·목단(牧丹) 2면을 합하여 연백군(延白郡)으로 개칭했다. 해방 당시에는 대부분 38도선 이남이었으나, 6.25 사변의 휴전과 더불어 북한에 속하게 되었다.

인물편집

조선 왕실과의 인척관계편집

항렬표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