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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편집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사로(斯盧) 취산진지촌(觜山珍支村)의 촌장(村長) 지백호(智伯虎)가 32년(유리이사금 9) 정씨(鄭氏) 성을 하사받았다고 한다.

역사편집

연일 정씨(迎日鄭氏)의 시조인 정종은(鄭宗殷)이 신라 때 간의대부(諫議大夫)를 지냈다고 한다. 정종은(鄭宗殷)의 후손 정의경(鄭宜卿)이 영일호장(迎日戶長)을 지내고 영일현백(迎日縣伯)에 봉해졌으므로 그 후손들이 본관을 영일(迎日)로 하였다 한다. 본관은 연일(延日)의 옛 지명인 영일(迎日)로 쓰기도 하고, 영일(迎日)의 마을인 오천(烏川)으로 쓰기도 한다.

연일 정씨는 소목(昭穆)을 밝히지 못하는 두 파가 있다. 하나는 고려 의종 때 중신으로 추밀원지주사(樞密院知奏事)를 지낸 정습명(鄭襲明)을 1세조로 하는 지주사공파(知奏事公派)인 정몽주(鄭夢周)·정문예(鄭文裔)계와 고려 때 감무(監務)를 지낸 정극유(鄭克儒)를 1세조로 하는 감무공파(監務公派)인 정사도(鄭思道)·정철(鄭澈)계로 나뉘었다.

본관편집

연일(延日)은 경상북도 동해안에 위치한 포항시 연일읍 일대의 옛 지명이다. 신라 때에는 근오지현(斤烏支縣) 또는 오량지현(烏良支縣)이라 불렀다가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임정현(臨汀縣)으로 개칭하고, 의창군(義昌郡)의 영현이 되었다. 940년(고려 태조 23)에 영일현(迎日縣)로 개칭되었고, 1018년(현종 9)에 경주부(慶州府)에 내속되었다. 1390년(공양왕 2)에 감무(監務)를 두면서 독립하였다. 조선 초에는 진(鎭)을 설치하고 병마사(兵馬使)가 지현사(知縣事)를 겸하게 하였다. 세종대에 다시 병마첨절제사로 고쳤다가 후에 현감만을 파견하였다. 1732년(영조 8)에 통양포(通洋浦) 아래에 포항창(浦項倉)을 설치해 함경도 진휼(賑恤)의 바탕으로 삼게 함으로써 함경도와 경상도를 연결하는 동해안 해로의 중심 역할을 하였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동래부 영일군이 되었고, 1896년 경상북도 연일군이 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연일군은 연일면 등 5개면으로 분면되어 흥해·장기·청하군과 함께 영일군으로 통폐합되었고, 1980년 연일면이 연일읍으로 승격하였다. 1995년 영일군이 포항시에 통합되었다.

분파편집

  • 지주사공파(知奏事公派) - 정습명
    • 문충공파(文忠公派) - 정몽주
    • 생원공파(生員公派) - 정문예
    • 문계공파(文繼公派) - 정문계
    • 문손공파(文孫公派) - 정문손
    • 사정공파(司正公派) - 정문비
    • 정랑공파(正郞公派) - 정문욱
    • 만호공파(萬戶公派) - 정형지
    • 도사공파(都事公派) - 정희손
  • 감무공파(監務公派) - 정극유
    • 강화공파(江華公派) - 정효손
    • 원평공파(原平公派) - 정효순
    • 부마공파(駙馬公派) - 정효전
    • 판결공파(判決公派) - 정자원
    • 이의공파(吏議公派) - 정자양
    • 위양공파(威襄公派) - 정자제
    • 김제공파(金堤公派) - 정자숙
    • 오성군파(烏城君派) - 정후
  • 양숙공파(良肅公派) - 정자피
    • 덕성공파(德成公派) - 정덕성
    • 효성군파(孝成君派) - 정효성

인물편집

집성촌편집

항렬자편집

  • 생원공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