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빈 강씨(令嬪 姜氏, ? ~ 1483년 3월 7일(음력 1월 20일))[1])는 조선 세종의 후궁이다. 세종과의 사이에서 화의군을 낳았다.

영빈 강씨
令嬪 姜氏
조선 세종의 후궁
신상정보
출생일 미상
사망일 1483년 3월 7일
배우자 세종
자녀 1남
화의군(和義君)

생애 편집

본관은 진주이다. 본래 궁인(宮人)으로, 세종의 승은을 입어 1425년(세종 8년) 9월 5일, 아들 화의군(和義君)을 낳았다.[2] 영빈 강씨에 대한 기록은 전무하며, 언제 어떠한 이유로 정1품 (嬪)에 봉작되었는지 알 수 없다.

아들인 화의군이 1455년(단종 3년) 금성대군, 혜빈 양씨와 관련하여 유배되었으며, 이후 노비와 가사, 전토 등을 적몰당하고 외방에 부처되는 등의 불운을 겪었다.

1483년(성종 14년) 1월 사망하였다.[1]

사후 편집

강씨는 아들 화의군이 반역죄로 금산에 유배되자, 왕실 족보인 《선원록》등에서 아들과 함께 작호가 삭제되었다. 이후 중종대에 화의군이 신원되었고, 강씨는 1799년(정조 23년), 유생들이 상언하여 단종복위운동 때에 화를 입은 왕족들을 배향할 것을 청할 때, 혜빈 양씨, 경혜공주, 단종의 외조모 최씨와 이모 권씨, 후궁 권씨 등 5명과 함께 사릉에 배향되었다.[3]

가족 관계 편집

  • 남편 : 세종(世宗, 1397 ~ 1450)
    • 장남 : 화의군 영(和義君 瓔, 1425 ~ ? )
    • 자부 : 현부인 밀양 박씨(縣夫人 密陽 朴氏)-증찬성(贈贊成) 박중손(朴仲孫)의 딸
      • 손자 : 여흥군(驪興君) 이원(李轅)
      • 증손자 : 재양군(載陽君) 이급(李級)
      • 증손자 : 대곡부령(大谷副令) 이신(李紳)
      • 증손자 : 회인부령(懷仁副令) 이수(李綬)
      • 손자 : 여성군(驪城君) 이번(李?)
      • 손자 : 금란수(金蘭守) 이식(李軾
    • 자부(첩) : 미상
      • 서손 : 여흥정 원(驪興正 轅)
      • 서손자부 : 보성 오씨(慎人 寶城 吳氏)
      • 서손 : 여성수 번(驪城守 轓)
      • 서손자부 : 은진 송씨(惠人 恩津 宋氏)
      • 서손 : 금란수 식(全蘭守 軾)
      • 서손자부 : 개성 고씨(惠人 開城 高氏)
      • 강희맹,강희안의 의 형제자매이시다

각주 편집

  1. 성종실록》 150권, 성종 14년(1483년 명 성화(成化) 19년) 1월 20일(계축)
    의금부에서 이영이 외방 종편하는 일에 대하여 아뢰다
    의금부(義禁府)에서 아뢰기를, "전일 성상께서 이영(李瓔)의 어머니 강씨(姜氏)가 나이 많아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고 또 이영이 이미 종편(從便)하였다 하여 특별히 이영에게 그 어머니가 죽을 때까지 기한하여 서울에 살면서 효도를 다하게 하였는데, 이제 강씨가 죽어 장사를 이미 마쳤으니, 청컨대 영을 보내어 외방 종편(外方從便) 하게 하소서." 하였는데, 명하여 상제(喪制)를 마친 뒤에 외방 종편하게 하였다."
  2. 세종실록》 29권, 세종 7년(1425년 명 홍희(洪熙) 1년) 9월 5일(신축)
    궁인에게서 왕자 이영이 출생하다
    왕자 이영(李瓔)이 출생하였다. 궁인(宮人)이 낳았다.
  3. 일성록》 정조 23년(1799년) 8월 22일(기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