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윤 (화가)

대한민국의 서양화가 (1939–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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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윤(吳承潤[4], 1939년 ~ 2006년 1월 13일[5])은 대한민국서양화가이다. 화가 오지호의 아들로 광주광역시 출생이다.[4] 개성에서 태어나[6][7] 8·15광복 무렵까지 그곳에서 살다가 남한으로 내려와 유년 생활을 전남 화순 동북에서 보낸 뒤 광주 지산동으로 옮겨왔다고도 한다.[7]

오승윤
신상정보
출생 1939년
일제강점기 광주 또는 일제강점기 개성
사망 2006년 1월 13일(2006-01-13)
대한민국 광주광역시
분야 미술
부모 아버지 : 오지호(吳之湖)
배우자 이상실[1]
자녀 오병희, 오수경,[2] 오병재[3]
주요 작품
〈풍수〉
영향
서명

‘오방색의 화가’라 불렸다.[8][9][10] 전남대학교 예술대학을 창설, 초대 교수를 지냈으며, 프랑스 파리에서 연수했다.[8] 1996년 몬테카를로 국제현대미술전에서 특별상을 수상하는 등 유럽 화단의 주목을 받기도 했으며, 1999년 6월 프랑스의 미술지 〈위니베르 데자르〉(Univers Des Arts)의 표지에 아시아 최초로 오승윤의 작품 〈풍수〉가 실렸다.[11][7]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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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4-1977 전남미술대전 심사위원, 1974-1982 전남대 예술대학 창설 및 교수, 1977-1981 국전 추천작가 및 초대작가, 1985-1995 미술대전 심사위원 및 운영위원 등[4]

개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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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7 개인전 (광주 전일미술관), 1980 개인전(광주 현대화랑), 1997 개인전(광주 원화랑) 등[4]

단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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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7 역대국전수상작가전(국립현대미술관), 1986 한국현대미술의 어제와 오늘전(국립현대미술관), 1990 한국미술:오늘의 상황전(예술의전당), 1993∙2003 살롱 도톤전(파리 그랑팔레), 1994 서울국제현대미술제(국립현대미술관), 2000 한국현대미술작가전(일본 삿포로 이베소도회장) 등[4]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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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8 목우회 공모전 최고상, 1969 전남미술대전 최고상, 1976 국전 문공부장관상, 1996 모나코 몬테카를로국제현대미술전특별상, 2004 세계평화교육자상[4]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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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월 13일 광주광역시 서구 풍암동 ㅈ아파트에서 투신해 자살했다. 유족들은 “고인이 지난해 수차례 서울 전시회가 연기된데다, 계약을 끝낸 출판사에 작품 40여 점을 건넸는데도 화집 출간이 미뤄지자 소송을 준비했다”며 “심각한 정신적 중압감으로 최근 우울증세를 보였다”고 말했다.[5]

당시 오승윤과 한 출판사가 ‘1년에 500만원 가치의 그림을 그려 출판사에 내면 출판사는 그만큼의 대가를 지불하는 한편 1억원 정도를 투자해 2004년까지 화집을 발간한다’는 골자의 계약서를 썼다고 한다. 문제는 여기에 ‘단 2006년까지 오화백은 화집에 들어있는 작품을 일반에 팔 수 없고 화집이 나올 때까지는 이미 받은 작품과 200호 이내에서 교환할 수 있다’는 단서가 붙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출판사는 끊임없이 오승윤에게 그림을 요구했고, 가져간 것만 유화 25점, 드로잉 7점, 판화 원판 37점이라고 한다. 오승윤은 출판사의 요구에 지친 데다 그림을 돌려받을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해 상심한 나머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3]

작품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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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윤은 “한국인의 영혼을 간직한 한국적인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내 작품의 영원한 명제는 자연과 인간의 조화이며 평화이다.”라고 말했다.[8] 오승윤은 자신의 작품이 단청과 민화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라고 밝혔다.[12]

그의 작품 세계는 매우 단순하면서도 풍수와 샤머니즘을 섞은 오방정색(五方正色)의 세계이다.[3] 오방정색 중 청(靑)은 동(東), 백(白)은 서(西), 적(赤)은 남(南), 흑(黑)은 북(北), 황(黃)은 중앙을 뜻한다.[7]

미술평론가 윤범모는 “유화 붓을 든 화가 오승윤의 단순한 구성과 소재는 어쩌면 긴장미라든가 무게감각을 해치게 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놓칠 수 없는 것은 그의 독자적 발성법”이라면서, “오승윤의 평생 명제는 자연과 인간의 조화, 바로 오방색으로 풀어낸 평화사상이었다”라고 평가했다.[9]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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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미리 (2014년 2월 27일). “알록달록 산골, 예순일곱 그가 少年처럼 노닐었네”. 《조선일보》. 2017년 12월 16일에 확인함. 
  2. 조선미 (2011). “예향의 산실, 오지호 가옥”. 《광주문화재단 - 뉴스레터》. 2017년 12월 16일에 확인함. 
  3. 문갑식 (2015년 11월 10일). “문갑식 기자의 기인이사(奇人異士)(31):오지호의 화순과 호남의 3대(下) 이 카테고리의 다른 기사보기 화가의 비극적인 죽음 뒤에는,,,”. 《프리미엄조선》. 2016년 1월 13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7년 12월 15일에 확인함. 
  4. “인명사전 - 오승윤”. 《김달진 미술연구소》. 2017년 12월 15일에 확인함. 
  5. 정대하 (2006년 1월 13일). “원로화가 오승윤 화백 투신 자살”. 《한겨레신문》. 2017년 12월 15일에 확인함. 
  6. “우리시대의작가들 > 회화 > 오승윤”. 《광주미술문화연구소》. 2017년 12월 15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7년 12월 16일에 확인함. 
  7. 서일호 (2008년 5월 30일). “weekly chosun] ‘비극적 죽음’ 오승윤 화백, 그리고 2년…”. 《조선일보》. 2017년 12월 15일에 확인함. 
  8. 도재기 (2014년 2월 24일). “6년 만에 다시 보는 ‘오승윤의 오방색 향연’”. 《경향신문》. 2017년 12월 15일에 확인함. 
  9. 김인구 (2014년 2월 28일). '오방색'으로 풀어낸 인간과 자연의 조화”. 《이데일리》. 2017년 12월 15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7년 12월 16일에 확인함. 
  10. 이한빛 (2017년 4월 21일). “봄의 절정 담아내듯 따뜻한 그림들…아트데이 4월 온라인 미술품 경매”. 《헤럴드경제》. 2017년 12월 16일에 확인함. 
  11. 강경구 (2006년 1월 15일). “광주가 나은 세계적인 화가 오승윤 화백의 죽음 그의 차향 은은한 작업실에서 난 바다를 생각해냈었다. 끝없는 바다를...”. 《뉴스파워》. 2017년 12월 15일에 확인함. 
  12. 조현욱 (2000년 9월 2일). “[사람 사람] '동서양 미술전' 초대받은 화가 오승윤씨”. 《중앙일보》. 2017년 12월 15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