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 조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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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 조씨(玉川趙氏)는 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을 관향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시조 조장(趙璋)은 고려 때 광록대부 검교대장군 수 문하시중(光祿大夫 檢校大將軍 守 門下侍中)을 지냈다. 혹칭 순창 조씨라 한다.
나라 | 한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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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향 | 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 |
시조 | 조장(趙璋) |
집성촌 | 전라남도 순천시 전라남도 곡성군 전라남도 담양군 금성면 월산면 |
주요 인물 | 조원길, 조유, 조숭문, 조철산, 조경한, 조연하, 조순승, 조태일, 조홍규, 조재환 |
인구(2015년) | 53,406명 |
역사
편집시조 조장(趙璋. 일명 조준(趙俊) 또는 조준장(趙俊璋)이라 한다.)은 고려 때 광록대부 검교대장군 문하시중을 지냈다. 옥천(玉川)은 전라도 순창(順昌)의 고호이다.
그의 증손 조원길(趙元吉)이 고려 공양왕 때 일등공신에 책록되고 옥천부원군(玉川府院君)에 봉해졌다. 은퇴 후 순창에 낙향하여 다시 벼슬하지 않고 끝까지 고려에 절의를 지켜 포은 정몽주, 목은 이색 등과 함께 5은(隱)이라 불렸다.[1][2]
옥천 조씨의 시조 조장은 순창 조씨의 시조 조자장의 7대손이라는 설이 있으나, 문헌이 전해지지 않아 고증이 불가하다. 그러나 각 문중에선 옥천 조씨와 순창 조씨의 뿌리가 같다고 보고 있다.
본관
편집옥천(玉川)은 순창(淳昌)의 별호이다. 순창은 전라북도 남부에 위치하는 지명이다. 원래 백제의 도실군(道實郡)인데, 757년(신라 경덕왕 16) 순화군(淳化郡)으로 고쳤다. 940년(고려 태종 23) 순창현으로 남원부에 속하였고, 1314년(충숙왕 1)에 순창군으로 승격되어 조선시대에도 이어졌다. 《세종실록지리지》에 전라도 남원도호부 순창군의 토성(土姓)으로 설(薛)·염(廉)·임(林)·조(趙)·옹(邕) 5성이 기록되어 있다.[3] 1896년 전라북도 순창군이 되었다.
분파
편집- 요제공파(樂齋公派)
- 정언공파
- 태인공파
- 지평공파
- 부정공파(副正公派)
- 첨추공파
- 정읍공파
- 찰방공파
- 참판공파
- 절민공파
- 광양공파(光陽公派)
- 절제공파(節制公派)
- 판서공파(判書公派)
- 부사공파(府使公派)
- 조호공파(朝湖公派)
인물
편집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13명을 배출하였다.
고려
편집- 조홍규(趙洪珪) : 판도판서
- 조전(趙佺) : 옥천부원군
- 조원길(趙元吉) : 시호 충헌(忠獻), 고려 오은, 수문하시중, 옥천부원군
- 조여(趙璵) : 검교문하시중
- 조원기(趙元琦) : 중문지후
- 조유(趙瑜) : 전농시부정, 두문동칠십이현
조선
편집- 조숭문(趙崇文) : 시호 절민(節愍), 조부 조원길(趙元吉), 부 조유(趙瑜), 아들 조철산(趙哲山), 처조카 성삼문(成三問), 함경도 병마절도사 역임, 증 병조판서
- 조사순(趙士淳) : 면천군수
- 조구령(趙九齡) : 춘추관기사관
- 조부(趙溥) : 사헌부지평
- 조시평(趙時平) : 사간원정언
- 조적(趙勣) : 안음훈도 - 외손 성리학자 하서 김인후
- 조사문(趙斯文) : 수의부위좌군사정
- 조종손(趙從孫) : 태인현감
- 조순(趙珣) : 노성현감, 내자시판관
- 조침(趙琛) : 할아버지 조사문(趙斯文), 아버지 조지강(趙智崗), 1515년(중종 10) 문과 급제, 1519년 정언(正言), 1523년 함경도 어사, 홍문관교리·이조정랑, 1525년 세자시강원보덕, 1530년 봉상시정, 1532년 장례원판결사, 호조참의, 1534년 호조참판, 1537년 경주부윤·병조참의
- 조기현(趙基賢) : 증 통훈대부 사복시정
- 조진풍(趙鎭豊) : 증 통정대부 승정원 좌승지 겸 경연참찬관
근·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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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편집같이 보기
편집각주
편집- ↑ 네이버 지식백과 - 옥천 조씨[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 ↑ 순창군지(順昌君誌)에 조장과 그의 손자 조전(趙佺)에 관한 내용이 보인다.
- ↑ 《세종실록》 151권, 지리지 전라도 남원도호부 순창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