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수복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가수

왕수복(王壽福, 1917년 4월 23일 ~ 2003년 6월 1일)은 일제 강점기부터 활동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가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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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수복
기본 정보
본명왕성실
출생1917년 4월 23일
대한제국 평안남도 강동군
사망2003년 6월 1일(2003-06-01) (86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양
직업가수
장르신민요,민요
활동 시기1933년 ~ 1990년대

생애편집

평안남도 강동군 출신으로 편모 슬하에서 자랐다. 명륜여자공립보통학교 3학년 때 학업을 중단하고 평양기생학교에 입학하였다. 기생학교에서 다양한 기예를 배워 기생이 되었다.

노래에 재능을 보인 왕수복은 10대 중반이던 1933년콜럼비아레코드에서 〈울지 말아요〉와 〈한탄〉을 취입하여 최초의 기생 출신 대중가요 가수가 되었다. 이듬해 데뷔한 선우일선과 함께 기생 출신 신민요 가수로 쌍벽을 이루었다.[1] 1935년에 《삼천리》가 실시한 인기 투표에서 선우일선, 이난영, 전옥에 앞서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2]

'유행가의 여왕'으로 불리며 인기 정상에 있던 1936년에 일본으로 건너가 개인 교습으로 서양 음악을 공부했다. 이후 메조소프라노 가수로 변신하여 주로 조선 민요를 서양 성악 창법으로 불렀다. 당시 인터뷰를 통해 "최승희씨가 조선무용을 살린 것처럼 나는 조선의 민요를 많이 노래하고 싶습니다."라고 밝힌 바 있다.

소설가 이효석경제학김광진의 연인으로도 유명하다. 1942년 이효석이 사망할 때 임종을 지켰고, 이후 시인 노천명의 연인이었던 김광진과 결혼하였다. 김광진이 월북했을 때 함께 평양에 남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정착했다.

1953년에 중앙라디오 방송위원회 전속가수로 가수 활동을 재개한 뒤, 1955년에는 국립교향악단 성악가수가 되었다. 1959년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공훈배우 칭호를 수여받았으며, 말년까지 최고의 대우 속에 활동하고 사후에는 애국렬사릉에 묻혀 있다. 1965년에 김광진과 함께 판문점을 관광하는 모습이 포착되어 대한민국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3]

참고자료편집

각주편집

  1. 강옥희,이영미,이순진,이승희 (2006년 12월 15일). 《식민지시대 대중예술인 사전》. 서울: 소도. 171쪽쪽. ISBN 978-89-90626-26-4. 
  2. 김수현 (2007년 2월 1일). “근대 대중문화의 스타로 변신,일제통치 정책에 동원되기도 - 사진으로 만나는 근대의 풍경 | (2) 기생-하”. 《민족21》 (제71호). [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3. 임종업 (2006년 9월 21일). “조선 유행가의 여왕 왕수복 아시나요”. 한겨레. 2008년 7월 16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