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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심지(王審知, 862년 ~ 925년, 재위:909년 ~ 925년)는, 중국 오대십국시대의 민의 초대 국왕. 자는 신통(信通).

생애편집

그는 광주고시(光州固始)사람으로 형 왕조(王潮)와 함께 당나라 말기 혼란속에서 중앙의 혼란을 피해 복건으로 이주하여 이곳을 점령하였다. 896년 왕조는 당나라로부터 무위군절도사(武威軍節度使) 자리를 인정받았으며, 다음해 왕조가 죽자 왕심지가 지위를 이어받았다.

907년 주전충당나라로부터 선양을 받아 후량을 세우자, 왕심지는 후량에 입조하여 민왕에 봉해졌다. 왕심지는 내정에 힘을 기울여 당시 아직 낙후된 지역이었던 복건의 개발을 진행해 크게 발전시켰다. 또한 남해 교역에서 이익을 얻자, 문인, 승려 등을 모아 문화를 진흥시켰다.

이러한 선정으로 인해 왕심지는 개민왕(開閩王)이라 불리면서 복주에서는 민왕덕정비(閩王德政碑)가 세워져 지금까지도 방문자가 끊이지 않는다.

그러나 925년 왕심지가 죽은 후 내분이 계속되었다. 바로 다음해 왕심지의 장남 왕연한(王延翰)이 제위에 올랐으나, 동생 왕연균(王延鈞)에게 살해당하고, 그대로 왕연균이 제위에 올랐다.

전임
왕조
위무군 절도사
898년 ~ 925년
후임
왕연한
전임
없음(왕국의 창건자)
제1대 민나라
898년 ~ 925년
후임
왕연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