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용득

우용득(禹龍得, 1950년 2월 13일 ~ )은 대한민국의 전 야구 감독, 야구 해설가이다.

우용득
Woo Yong-De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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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국적 대한민국
생년월일 1950년 2월 13일(1950-02-13) (71세)
출신지 대구광역시
신장 172 cm
선수 정보
투구·타석 우투우타
수비 위치 포수
프로 입단 연도 1982년
경력

선수경력

코치 경력

감독 경력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아시아선수권 1971 서울

대구 출신으로서, 대구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실업 야구 한일은행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포지션은 포수로서 1970년대 국가대표 선수였다. 1981년 선수 생활을 은퇴하고 한일은행 코치로 있다가 1982년 KBO 리그의 출범과 함께 연고 팀 삼성 라이온즈의 코치진에 합류하였다. 코치라고는 했지만, 그 당시에 워낙 젊었기 때문에 1983년까지 종종 선수를 겸하여 출전하기도 했다.

그 이후, 1988년 4월 1일부터 2년 계약 형식으로 MBC 청룡에서 코치를 맡은 것을[1] 제외하면 계속 삼성 라이온즈의 코치로 재직했다. 이후, 1990년 11월 2일부터 3년 계약 형식으로 삼성 감독에 취임했지만 부임 첫 해인 1991년에는 본인(김성근)의 스파르타식 훈련 때문에 부상선수가 속출하여 3위로 떨어진 데 이어 1992년에는 4위로 간신히 진출한 준플레이오프에서 2패로 탈락하여 2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하자 임기를 1년 남겨둔 채[2] 물러난 김성근의 후임으로 1992년 10월 5일부터 3년 계약 형식으로 감독 데뷔하였다. 감독이 되자 세대교체에 힘써서 노장 선수들을 정리하고 젊은 선수들로 체질을 개선했다. 1993년 정규 시즌을 2위로 마치고 1993년에서 숙명의 라이벌 해태 타이거즈와 접전을 벌여 초반에 2승 1패로 앞서 나갔으나, 젊은 선수들의 경험 부족으로 3연패를 당해 우승에 실패하였다.

게다가, 1994년1995년에는 간판급 선수들의 부상 뿐 아니라 개인주의가 선수단에 전염되면서 팀 분위기가 흐트러져[3] 내리 5위로 시즌을 마감하여 1995년을 끝으로 3년 계약이 종료되자 감독에서 물러났다. 이후 롯데 자이언츠에서 2군 감독을 지내다가 2001년 7월 김명성 감독이 급사하자 감독 대행이 되었다. 2002년 시즌을 맞아 7년 만에 정식 감독으로 복귀하나, 투자에 소극적인 구단과 타선을 이끌었던 호세의 2중 계약 파문 등 어수선한 팀 분위기 때문에 최하위를 전전하고 16연패를 당하기도 하면서 그 해 6월에 백인천에게 자리를 넘기고 해임되었다.

이후 신문의 야구 컬럼을 쓰기도 하고 야구 해설가 등을 맡고 있다가, 2009년 삼성 라이온즈의 스카우트 팀에 합류하여 복귀했다.[4]

본래 투수였던 이승엽, 이대호를 타자로 전향시켜 훗날 팀 타선의 핵심으로 발돋움하게 한 사람이다.

출신학교편집

통산 기록편집

실업 야구편집

프로 야구편집

연도 소속 타율 경기 타수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삼진 병살타 희생타 장타율
1983년 0.111 14 18 2 0 0 0 1 0 0 2 5 0 0 0.111
통산 1시즌 0.111 14 18 2 0 0 0 1 0 0 2 5 0 0 0.111

각주편집

  1. “禹龍得(우룡득)코치 청룡과 계약”. 동아일보. 1988년 4월 1일. 2020년 12월 22일에 확인함. 
  2. 최영호 (1999년 3월 10일). “[삼성라이온즈 18년 .5] 김성근 감독”. 영남일보. 2020년 12월 22일에 확인함. 
  3. 최영호 (1999년 3월 13일). “[삼성라이온즈18년 .6] 우용득 감독”. 영남일보. 2020년 12월 22일에 확인함. 
  4. 삼성, 선동열 감독과 5년간 27억원 최고액 재계약 - 일간스포츠

외부 링크편집

전임
김명성
제9대 롯데 자이언츠 감독
2001년 7월 ~ 2002년 6월
후임
백인천
전임
김성근
제7대 삼성 라이온즈 감독
1993년 ~ 1995년
후임
백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