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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성 박씨(月城 朴氏)는 경상북도 경주 월성동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역사편집

월성 박씨(月城 朴氏)의 시조신라 경명왕 박승영의 막내아들인 신라 왕족 종실 박언의(朴彦儀)이고 1세 중시조고려 혜종 치세 시대 문관 관료 박휘(朴徽)이며 2세 중시조고려 현종 치세 시대 하급 관료 박인육(朴仁育)이다.

월성 박씨(月城 朴氏)의 중시조 박휘(朴徽)는 고려 혜종 시대 초기에 판결사(判決事)라는 관직을 역임하였다.

한편, 월성 박씨의 시조 박언의(朴彦儀)는 신라 경명왕의 막내아들로 월성대군(月城大君)에 봉해졌다는 전설은 후대에 족보를 편찬하면서 만들어진 전승이다.

고려 때에 재능직을 지낸 하급 관료 출신의 박인육(朴仁育)을 월성 박씨 2세 중시조이자 월성 박씨 본격 1세조로 하여 대를 잇고 있다.

월성 박씨 주요 인물에는 일제 강점기 경기도 인천 제물포 지방 독립운동가 박철준(朴喆俊, 1901년 ~ 1941년) 등이 있다.

분적된 성씨 본관편집

월성 박씨(月城 朴氏)에서 직계 분적된 성씨 본관에는 조선 태종 치세 시절이던 1401년에 분적된 의흥 박씨(義興 朴氏) 등이 있다.[1] 의흥 박씨의 주요 인물에는 조선 시대 문관 관료 박수검(朴守儉, 1629년 ~ 1698년) 등이 있다.

인구편집

  • 1985년 5,120가구 20,506명
  • 2000년 7,251가구 22,917명

외부 링크편집

각주편집

  1. 의흥 박씨(義興 朴氏)의 시조는 을규(乙規)인데 그는 원래 고려 말기 시대 해주 왕씨(海州 王氏) 후손으로 고려 공양왕 치세 시절 음서로써 천거되어 1390년에서 1391년까지 고려국 병부상서(高麗國 兵部尙書)를 지내다가 1391년 고려국 병부상서 직책을 사퇴하고 결국 개경을 떠나 서해도 해주로 건너갔지만 1392년 고려국이 멸국된 후 조선국(朝鮮國)이 창건되면서 결국 정치적 박해를 피하고자 또다시 서해도 해주를 떠나 경상도 군위군 의흥에 은둔 및 두문불출하다가 조선 태종 치세 시절이던 1401년 외가 성씨인 월성 박씨(月城 朴氏)를 따라 왕을규(王乙規)에서 박을규(朴乙規)로 개명하고 의흥 박씨(義興 朴氏)를 새로 본관을 삼아 의흥 박씨 시조가 되었으며 훗날 조선 중종 치세 시절인 1523년 의흥 박씨 시조 박을규의 직계 후손인 박득서(朴得署)가 의흥 박씨 중시조로써 계대를 재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