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메뉴 열기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은 조선 세종이 지은 악장이다. 상·중·하 모두 3권으로 노래 500여 수로 추정된다. 세종 29년에 왕이 수양대군이 엮은 《석보상절》을 보고, 그 대목대목을 되도록 한글로써 가사를 지은 것이다. 현존하는 것은 상권뿐이며, 나머지는 《월인석보》를 통해서 그 내용을 알 수 있다. 1963년 9월 2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398호로 지정되었다가, 2017년 1월 2일 대한민국의 국보 제320호로 승격 지정[1]되었다.

월인천강지곡 권상
(月印千江之曲 卷上)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국보
종목국보 제320호
(2017년 1월 2일 지정)
수량1책(71장)
시대조선시대
소유(주)미래엔
주소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하오개로 323
(운중동, 한국학중앙연구원)
정보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정보
월인천강지곡 권상
(月印千江之曲 卷上)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보물(해지)
종목보물 제398호
(1963년 9월 2일 지정)
(2017년 1월 2일 해지)
정보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정보

개요편집

조선 세종 28년(1446) 소헌왕후 심씨가 죽자 세종은 그의 명복을 빌기 위해 아들인 수양대군(후의 세조)에게 명하여 불교서적을 참고하여 한글로 번역하여 편찬한 것이 곧『석보상절』이다. 세종 29년(1447) 세종은『석보상절』을 읽고 각각 2구절에 따라 찬가를 지었는데 이것이 곧『월인천강지곡』이다.

월인천강지곡 권상(月印千江之曲 卷上) 체재의 특색을 항목별로 살펴보면, 첫째, 한글은 큰 활자를 쓰고 이에 해당되는 한자는 작은 활자를 썼다. 둘째, 한글의 자체는『용비어천가』와 같으나 원점을 쓰지 않았다. 셋째,『훈민언해』등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받침 없는 한자음에 ‘ㅇ’의 종성을 붙이지 않았다.

최초의 한글활자본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높은 유물로, 조선 전기의 언어와 어법을 연구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는 책이다.

국보 승격사유편집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은 한글을 창제한 세종이 그의 아내인 소헌왕후의 공덕을 빌기 위하여 직접 지은 찬불가이다. 훈민정음 창제이후 가장 빠른 시기에 짓고 활자로 간행한 점에서 한글 창제 후 초기의 국어학 연구와 출판인쇄사를 연구하는 데 매우 중요한 문헌이다. 비록 3분의 1 정도만 남은 零本이나 이 책이 갖는 국어학적, 내지 출판 인쇄사적 가치는 매우 높다는 점에서 국보로 승격할 가치가 있다.[1]

각주편집

  1. 문화재청고시제2016-152호[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국가지정문화재(국보․보물) 지정 및 보물 지정 해제, 지정번호 변경 고시》, 문화재청장, 대한민국 관보 제18919호, 125쪽, 2007-01-02

참고 자료편집

   이 문서에는 다음커뮤니케이션(현 카카오)에서 GFDL 또는 CC-SA 라이선스로 배포한 글로벌 세계대백과사전의 내용을 기초로 작성된 글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