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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린튼(영어: William Alderman Linton, 한국어: 인돈(印敦), 1891년 2월 8일 ~ 1960년 8월 13일)은 미국의 장로교 선교사이다. 22세 때 일제 강점기 조선 땅에 와서 48년간 의료, 교육 선교 활동을 했다. 전주 신흥학교, 기전여학교 교장을 지낸 윌리엄 린튼은 일제 강점기신사참배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쫓겨났다가 광복 후 다시 대한민국을 찾아 지금의 한남대학교를 설립하였다.

인돈
印敦
William Alderman Linton
대한민국 충청남도 도청 사회복지행정특보위원
(大韓民國 忠淸南道 道廳 社會福祉行政特報委員)
임기 1959년 1월 9일 ~ 1959년 5월 31일
대통령 이승만
부통령 장면
대표 김학응 (충청남도 도지사)
장관 김일환 (내무부 장관)
최인규 (내무부 장관)
차관 김장섭 (내무부 차관)
이성우 (내무부 차관)
신상정보
출생일 1891년 2월 8일(1891-02-08)
출생지 미국 조지아주 조지아 주 토머스빌
사망일 1960년 8월 13일(1960-08-13) (69세)
사망지 대한민국 충청남도 대전
본관 순천(順天)
학력 미국 콜럼비아 신학대학원
경력 선교사 출신 대학 교수
정당 무소속
배우자 인애자(印愛慈, Cynthia McLean Bell Linton)
자녀 슬하 4남(셋째아들 인휴, 막내아들 인도아)
친인척 배유지(장인)
인애란(삼자부)
인세반(손자)
인요한(손자)
종교 개신교(장로회)
서훈 2010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경력편집

일제 강점기편집

윌리엄 린튼은 1912년 컬럼비아 대학교 철학과를 나온 후 미국 남 장로교 선교사로 한국에 도착하였다. 그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시 48년 동안 호남과 충청 지역에서 선교와 교육사업을 위해 일하였다. 군산영명학교에서는 한국어성서영어를 가르쳤고, 전주 신흥학교기전여학교 교장을 역임했다. 그는 1919년 전라북도 군산의 만세시위 운동을 배후에서 지도하였고, 1919년 8월 미국 애틀랜타에서 열린 미국 남부지역 평신도대회에 참석하여 3.1운동의 실상을 국제사회에 알리고 지지를 호소하기도 했다.

전주신흥학교 교장으로 재직하고 있을 때, 일제의 강제적인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학교를 자진 폐교해 1940년 일제로부터 추방되었다.

광복이후편집

그러나 광복 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한국 전쟁 중에도 한국을 떠나지 않고 전라북도 전주에 남아 성서학교를 운영하였고, 전쟁 막바지에는 경상남도 부산에서 선교 활동을 하였다.

1956년 대전기독학관을 설립했고 1959년 대전대학(현,한남대학교)으로 인가를 받아 초대학장에 취임했으나, 이듬해 으로 사망하였다.

상훈편집

  • 대한민국 정부2010년 3·1절을 맞아 윌리엄 린튼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하였다. 그가 1919년 전북 군산의 만세시위 운동을 지도하고, 3·1운동의 실상을 국제사회에 알리며 지지를 호소한 공로를 인정한 것이다.[1]

가족편집

윌리엄 린튼은 한국선교사인 유진 벨(Eugene Bell, 한국명 배유지(裵裕祉))의 딸 인애자와 결혼하여 4명의 아들을 낳았다. 셋째와 넷째가 각각 인휴, 인도아이다.

아들 인휴군산에서 태어나 전남의 도서지역에 600여 개의 교회를 개척했으며, 인천상륙작전에 참전하기도 했다. 인휴의 7남 2녀 중 삼남 인세반은 '유진 벨 재단'의 회장 직을 맡고 있으며, 막내아들 인요한연세대학교 가정의학과 교수, 세브란스 병원 원장이고 북한에 구급활동을 위해 앰뷸런스를 보내는 등 북한 의료지원에도 관여하였다.

드와이트 린튼은 청소년기를 한국에서 보내고 미국에서 대학을 나온 후 1952년 한국으로 돌아와 광주에서 의료봉사활동을 하였다.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정재학, 린튼 선교사에 건국훈장 애족장… 21세부터 48년간 복음화·독립운동 헌신[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국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