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 (신나라)

유영(劉永, ? ~ 27년)은 중국 신나라후한 초기 사람으로, 한 경시제의 양왕이었다가 경시제 사후 천자를 자칭하고 후한 광무제와 싸웠다. 전한의 양왕 유립(劉立)의 아들로 한나라의 종실이며, 양군 수양(睢陽)현 사람이다.

생애Edit

경시제가 즉위하자 경시제를 찾아뵙고 양왕에 봉해져, 전한 시절 양의 도읍인 수양에 그대로 도읍을 두었다. 경시제의 정치가 어지러워지자 경시제에게서 독립해 아우 유방(劉防)을 보국대장군(輔國大將軍), 그 다음 아우 유소공(劉少公)을 어사대부로 삼고 유소공은 또 왕으로 봉했다. 주건(周建) 등의 호걸을 불러모아 장수로 삼고, 제음·산양···회양·여남 등 주변 군국을 공격해 28성을 획득했다. 주변의 군웅들에게도 관직을 주고 포섭을 하려 하여, 서방(西防, 산양군 창읍현 서남쪽에 위치한 요새)의 교강(佼彊)을 횡행장군(橫行將軍)으로, 동해군을 점거한 동헌(董憲)을 익한대장군(翼漢大將軍)으로, 제군을 평정한 장보(張步)를 보한대장군(輔漢大將軍)으로 삼았다. 그리고 그들과 연합해 동방을 평정했다. 경시제가 패망하자 스스로 천자를 일컬었다.[1]

건무 2년(26년) 여름, 광무제가 보낸 호아대장군(虎牙大將軍) 갑연 등과 싸웠다. 광무제 군에 내분이 있어 갑연과 다툰 소무(蘇戊)의 귀순을 받아 대사마에 회양왕으로 삼았지만, 서울 수양이 광무제 군에게 포위를 당해 몇 달 만에 함락됐고 자신은 가속과 함께 양군 우현(虞縣)으로 달아났다. 그러나 우현 백성들의 공격을 받아 어머니와 아내와 자식을 잃고 초로 달아났다. 소무·교강·주건 연합군의 구원을 받았으나 갑연에게 졌다. 건무 3년(27년) 봄에는 장보를 제왕(齊王)으로, 동헌을 해서왕으로 삼았다. 수양현 백성들이 광무제의 군대를 내쫓고 성을 유영에게 바쳤지만, 소무와 주건을 공격한 오한이 갑연과 군을 합쳐 수양을 포위하자 식량이 부족해 유영은 소무와 주건과 함께 성에서 달아났다. 달아나는 중에 장군 경오(慶吾)에게 살해됐고, 경오는 유영의 머리를 가지고 광무제에게 투항해 열후 봉해졌다. 유영의 아들 유우가 양왕으로 옹립돼 광무제와의 싸움을 이어나갔다.[1]

각주Edit

  1. 범엽: 《후한서》권12 열전제2 왕유방장이팽노전 중 유영·방맹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