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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산효왕 유흥(中山孝王 劉興, ? ~ 기원전 8년)은 중국 전한의 황족·제후왕으로, 광천나라의 후신인 신도나라의 첫 왕과 중산왕을 지냈다. 원제와 풍소의의 아들이다.

생애편집

건소 2년(기원전 37년)에 신도왕으로 봉해졌고, 신도왕으로 14년 있다 양삭 2년(기원전 23년)에 중산왕으로 옮겼다.[1]

성제는 적자는 없고 서자도 모두 일찍 죽어 아들 외에서 태자를 정하고자 승상 적방진·어사대부 공광·우장군 염포·후장군 주박을 불러서 의논했다. 이 중 공광은 상서에 나오는 상나라의 형제상속제에 의거해 중산효왕을 태자로 추천했다. 그러나 나머지 셋은 모두 황제의 조카 정도왕 유흔을 권했다. 성제는 중산효왕에게는 재주가 없고 중산효왕이 황제가 되면 자신이 태묘에 들어갈 수 없으므로, 외가 왕씨와 황후 조비연조소의와 의논해 정도왕을 태자로 세우니, 이가 곧 애제다.[1][2] 대신 중산효왕의 외숙 풍참(馮參)을 의향후(宜鄕侯)로 봉하고 중산효왕에게 1만 호를 증봉해 위로했다.

수화 원년(기원전 8년)에 죽었고, 아들 유기자가 뒤를 이었다.[1]

선대
(첫 봉건)
제1대 전한의 신도왕
기원전 37년 ~ 기원전 23년
후대
(폐지)
(15년 후) 유경
선대
(복국)
(12년 전) 중산애왕 유경
제8대 전한의 중산왕
기원전 23년 ~ 기원전 8년 8월 경술일[3]
후대
아들 유기자

각주편집

  1. 반고: 《한서》 권80 선원육왕전제50
  2. 위와 같음, 권81 광장공마전제51
  3. 순열: 《한기》 효성황제기4 권제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