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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영수 저격 사건

육영수 저격 사건(陸英修狙擊事件)은 1974년 8월 15일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재일 한국인 문세광이 당시 영부인 육영수를 저격하여 살해한 사건이다.

육영수 저격 사건
날짜 1974년 8월 15일
참여자 문세광
결과 문세광의 총에 피격된 육영수 사망
사망자 육영수
1974년 12월 20일 문세광 사형 집행

목차

사건 개요편집

1974년 8월 15일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장충동 국립중앙극장에서 박정희 대통령 연설 도중에 영부인 육영수 여사가 문세광이 쏜 총탄에 피격당하였고,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부속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오후 7시에 사망하였다.

문세광이 사용한 권총이 일본의 한 파출소에서 사라진 것이라는 사실, 문세광이 소지했던 위조 여권 발급 및 밀입국에 대한 책임, 문세광의 공범 중에 일본인이 끼어 있다는 사실 등으로 일본 정부는 법률적 내지, 도의적 책임을 면할 수가 없게 되었다.

사건의 진행편집

1974년 8월 15일 오전 10시 23분, 서울 장충동 국립중앙극장에서 광복절 기념식이 열렸다. 당시 문세광은 객석에 앉아있었는데, 광복절 기념식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경축사를 읽자, 갑자기 청중석에서 총성이 울렸다. 박정희 대통령은 연설대 뒤에 몸을 피하여 무사하였으나, 뒤이어 문세광이 발사한 여러 총탄 중 하나가 단상 옆에 앉아 있던 영부인 육영수 여사에게 명중되었다. 또한 문세광과 경호관 간의 총격전으로 기념식에 참석한 합창단 성동여자실업고등학교 2학년생 장봉화 양이 피격당해 숨졌다. 범인 문세광은 현장에서 체포되었고, 육영수 여사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부속병원으로 후송되어 신경외과 최길수 교수의 집도로 5시간 이상의 응급수술을 받았으나 오후 7시 향년 50세로 사망하고 말았다.

육영수 여사는 사건 발생 9분만에 서울대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오전 11시경부터 신경외과 과장 심보성 교수의 집도로 오후 4시 20분까지 뇌수술을 받았다. 근처 병원과 적십자혈액원의 모든 AB형 혈액을 쏟아붓는 큰 수술이었는데, 400㎖ 혈액 148병이 수혈되었다고 한다. 이 정도면 몸속의 모든 혈액을 거의 10번은 갈아치울 수 있을 만큼 많은 양이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육영수는 소생할 가망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총알이 우뇌의 가장 큰 정맥을 손상시킨 것이 결정적이었다. 집도의는 사건 다음날 "꼭 살렸어야 했는데… 5mm만 비켜 갔어도…"라며 침통해했다고 한다. 수술이 끝난 뒤, 박정희 대통령이 찾아와 회복실에서 약 20~30분 가량 육영수와 이별의 시간을 가졌다. 육영수는 이날 오후 7시경에 숨지고 말았다.

사건의 결과편집

위에서 언급했듯, 일본이 연관되어 있었던 정황이 보여 한일관계가 불편해졌으나, 일본정부가 책임을 솔직히 인정하면서 개선되었다. 그리고 9월 19일 집권당인 자유민주당 부총재인 시나 에쓰사부로가 수상 다나카 가쿠에이의 친서를 휴대하고 진사특사로 한국을 다녀갔다. 문세광대법원에서 사형을 선고를 받았으며 그해 12월 20일에 사형을 집행하게 되었다.

한편 당시 서울특별시장이었던 양택식은 행사 책임자로서 도의적 책임을 짊어지고 시장직에서 불명예 퇴임하고 말았다.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