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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춘년

윤춘년(尹春年, 1514년1567년)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언구(彦久), 호는 학음(學音)·창주(滄洲). 계겸(繼謙)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임(琳)이고, 아버지는 이조참판 안인(安仁)이며, 어머니는 장여관(鄭汝寬)의 딸이다.[1]

목차

생애편집

1534년(중종 29) 생원이 되고, 1543년 식년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였다. 이후 문한직(文翰職)을 역임하다가 1545년(명종 즉위년) 을사사화가 일어나자 친족인 소윤 윤원형(尹元衡)에게 아부하여 대윤일파의 제거에 앞장섰고, 다음해에는 병조좌랑이 되어 윤원로(尹元老) 제거에 크게 노력하였다.

이를 계기로 윤원형의 총애를 받게 되었고 이후 급속히 출세하게 되었는데, 이조정랑·장령·교리 등을 거쳐 1553년 대사간에 발탁되었다. 2년 뒤 부제학을 거쳐 대사헌이 되었으나 윤원형의 서얼허통론(庶孼許通論)을 공박하지 못하여 많은 비난을 받았다.

1558년 동지 겸 주청사(冬至兼奏請使)로 명나라에 다녀왔고 이어서 이조판서가 되었다. 1565년 예조판서로 있을 때 윤원형이 제거되자 파직당하고 향리에 은거하였다. 성격이 경박하고 자부심이 강하여 일찍부터 대학자로 자처하는 등 공명심은 많았으나, 주색을 즐기지 않고 비교적 청렴·결백하였다고 하며 청백리로 뽑히기도 하였다.[1]

금오신화편집

금오신화》는 일본에서 전해오던 목판본을 최남선(崔南善)이 발견하여 1927년 잡지 《계명》 19호에 소개를 하였다. 이 목판본은 1884년 동경에서 간행된 것으로 상하 두 권으로 되어 있다.[2] 1999년 9월에는 16세기조선 중기의 문신 윤춘년[3] 이 필사한 필사본이 발견되기도 했다.한국 최초의 한문소설로 꼽히는 김시습의 ‘금오신화(金鰲新話)’가 일본을 거쳐 중국에 들어가 각색돼 출판된 것으로 밝혀졌다.

금오신화중국어 각색본은 19세기 초반 일본에 유학한 중국인 윤온청(尹蘊淸)이 1914년 간행한 ‘동해유문(東海遺聞)’에 수록한 것으로 ‘금오신화’ 단편 5편 가운데 ‘이생규장전’을 각색한 ‘이생(李生)’과 ‘만복사저포기’를 손질한 ‘양생(梁生)’ 2편이 소개돼 있다.

윤온청의 각색본을 원전과 비교한 결과 대략적인 줄거리는 같으나 원문 내용이 대폭 삭제됐고 중국인들을 염두에 둔 부가설명이 들어 있는 점이 다르다. ‘금오신화’는 일본에서 인기가 많아 여러 차례 일본어 인쇄본이 간행되기도 하였다.[4][5]

같이 보기편집

미디어에서편집

각주편집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윤춘년(尹春年), 한국학중앙연구원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008년 11월 13일). “금오신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008년 11월 13일에 확인함. 
  3. 문정왕후, 윤원형의 조카이며 윤원로의 아들이다.
  4. 중국서 '번안'된 「금오신화」 공개 연합뉴스(2003.09.23) 기사 참조
  5. 김시습 '금오신화' 중국어 각색본 발견 동아일보(2003.09.23) 기사 참조

참고 자료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