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오흥태지려
의사오흥태지려(義士吳興泰之閭)는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난산리 416-3번지에 있는 정려 건축물이다. 2018년 4월 25일 제주특별자치도의 향토유산 제24호로 지정되었다. [1][2]
제주특별자치도의 향토유산 | |
종목 | 향토유산 제24호 (2018년 4월 25일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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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량 | 비석 1기 |
시대 | 1794년(정조 18) |
소유 | 군위오씨종친회 |
관리 | 군위오씨종친회 |
주소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난산리 416-3번지 |
지정 사유
편집오흥태(吳興泰, 1700년~?)는 정의현 난산리 유생으로, 1728년(영조 4) 이인좌 ․ 정희량 ․ 박필현 등이 이른바 이인좌의 난이라는 역모를 일으키자, 창의 격문을 삼읍에 돌려 근왕병(勤王兵)을 모집하였고, 이 격문에 따라 근왕병 수백 명이 모여 적진으로 출발하려고 하던 중 난이 평정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근왕병을 창의한 충의가 널리 알려져 마을 백성들에 의해 의사(義士)로 칭해졌다.[1]
이에 그 충의가 널리 알려져 이후 1794년(정조 18) 심낙수(沈樂洙) 제주목사가 그 사실을 조정에 보고하여 정표하였다. 또한 1850년(철종 1) 장인식(張寅植) 제주목사가 그의 향사를 지내기 위해 정의서당에 의사묘(義士廟)를 건립하였다.[1]
해당 비석은 조선시대 어사의 주청에 의해 의사(義士)로 정려된 제주사람에 대한 유일한 금석문으로, 향토사적 가치를 지녔다. 또한 비문에는 제주 사람 오흥태가 의사로 정려되게 된 경위, 역모사건 전말의 기록, 이에 대한 오흥태의 창의 과정, 이후 정려로 표창되는 과정 등이 상세히 기재되어 있어 18세기 조선 및 제주도의 사회상을 살필 수 있어 사료적 가치가 높다.[1]
그리고 해당 정려비는 제주산 조면암을 재로로 하여 두 개의 빗돌을 이어 전면에 그 내용을 횡으로 새기는 등 제주 및 육지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특이한 정려비의 형태를 지니고 있다.[1]
각주
편집- ↑ 가 나 다 라 마 제주특별자치도 공고 제2018-1210호,《「종달리 생개납 돈짓당」등 3건 제주특별자치도 향토유산 지정 공고》, 제주특별자치도지사, 제주도보 제715호, 9-11면, 2018-04-25
- ↑ 제주특별자치도 공고 제2018-2031호 ,《제주특별자치도 향토유형유산 제24호 지정 공고사항 정정 공고》, 제주특별자치도지사, 2018-07-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