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우 (정치인)

이강우(李康雨, 1890년 1월 10일[1]/1889년[2] 진주 ~ ?)는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가이자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이었다.

생애편집

  • 사립 산기고등측량학교 광산과 졸업
  • 관립한성외국어학교 졸업
  • 상해대학교 무역과졸업
  • 보성전문학교 법과 입학
  • 니혼 대학 법과를 졸업하였다.
  • 진주고등보통학교에서 3년간 교원생활을 하였고, 광업에도 종사하였다.
  • 진주시립근로학원장
  • 1919년 3월진주에서 김재화(金在華)등과 함께 독립만세시위를 계획하고 독립선언문과 교유문(敎喩文)을 수백매를 인쇄하고, 태극기를 제작하여 시민들에게 사전에 배포한 뒤 1919년 3월 18일 진주 장날을 기하여 시장에 운집한 수천군중을 규합하여 독립만세시위를 주동하다가 피체되어 보안법(保安法)과 출판법(出版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3]
  • 1948년 5월 10일 : 제헌 국회의원(경남 진주)
  • 제헌국회의 헌법, 정부조직법 기초위원
  • 한국 전쟁 당시 북조선 납치됐다.
  • 1954년경 황해도 수안목장의 노동자로 전락하였다.
  • 1956년 7월 재북 평화통일촉진협의회 중앙위원
  • 1958년 10월경 분산정책에 의하여 평북 의주농업 협동조합원[4]
  • 1990년에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장
  • 1989년 대통령표창을 수여받았다.

참고자료편집

  전 임
(초대)
제헌 국회의원(진주부)
1948년 5월 31일 - 1950년 5월 30일
무소속
후 임
류덕천
 

각주편집

  1. 민족정기선양센타 공훈록 Archived 2016년 3월 5일 - 웨이백 머신 에는 "1890년 1월 10일"이라 한다.
  2. 《대한민국 의정총람》, 국회의원총람발간위원회, (1994년)과 대한민국 헌정회 에는 "1890년"이라 한다.
  3. 1919년 3월초~: 판결문(1919. 6. 17 대구복심법원)·판결문(1919. 9. 6 고등법원)
  4. 1954년경~협동조합원: 사단법인 6·25전쟁 납북인사 가족협의회 Archived 2007년 9월 28일 - 웨이백 머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