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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긍익(李肯翊, 1736년 ~ 1806년)은 조선 후기의 실학자다. 자는 장경(長卿), 호는 완산(完山) 또는 연려실(燃藜室)이며, 한성부 출생이다. 이광사의 아들이다.[1] 본관전주(全州)이며, 조선의 제2대 임금인 정종의 서자 덕천군(德泉君)의 후손이다[2].

어려서 아버지 이광사에게 수학하여 학문과 글씨가 뛰어났으며, 실학을 제창하고 고증학자로서도 유명하였다. 그의 집안은 소론에 속하였는데, 노론의 집권으로 여러 번 귀양살이를 했으며 온 집안이 크게 화를 입었다. 많은 책을 저술했으나 여러 번 귀양살이를 하느라 대부분 유실되고, 조선 왕조 야사(野史)의 금자탑이라고 할 수 있는 《연려실기술》만 전한다.

목차

저작편집

이긍익의 역사에 대한 안목을 살펴 볼 수 있는 저작으로 《연려실기술》을 꼽을 수 있다. 이긍익은 고증을 역사에서 제일의 생명으로 여기고 어디까지나 '술이부작(述而不作)'과 '불편부당(不便不黨)'의 정신으로 남인 · 북인 · 노론 · 소론 및 유명 · 무명 인사를 가리지 않고 자료들을 섭렵, 인용하였으며, 거의 국내자료에 국한하였다. 이것은 한치윤(韓致奫, 1765 ~ 1814)이 《해동역사》를 쓸 때 외국자료를 통하여 한국사를 이해하려 한 것과 대조된다. 역사는 내 나라의 자료에 의하여 이루어져야 한다는 강한 자아의식 때문이었다. 뿐만 아니라, 역사서술에서 생명으로 다룬 것은 객관성 · 공정성 · 체계성 · 계기성 · 현실성이었는데 당시 상황에서 앞선 역사의식으로 평가되고 있다.

가계편집

함께 보기편집

각주편집

참고 문헌편집

  • 국어국문학자료사전, 이응백, 김원경, 김선풍 저, 한국사전연구사(199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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