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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면(李葂, 1577년 ~ 1597년)은 충무공 이순신의 셋째 아들로 정유재란 당시 고향 아산에서 이순신에 대한 보복으로 습격한 일본군에 항쟁하다 전사하였다. 본관은 덕수.

이면(李葂)
출생1577년
사망1597년
충청도 아산현
국적조선의 기 조선
직업의병
부모이순신, 방씨부인

생애편집

이순신과 방씨부인 사이에서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영리하고 말타기와 활쏘기를 잘했다고 한다. 정유재란 당시 이순신에 대한 보복으로 아산현에 습격한 일본군에 항쟁하다 전사하였다. 부친 이순신난중일기에서 이면의 죽음 소식을 듣고 애통했다.

저녁에 천안에서 온 사람이 집에서 보낸 편지를 전하는데, 봉함을 뜯기도 전에 온몸이 먼저 떨리고 정신이 어지러웠다. 거칠게 겉면을 뜯고 열이 쓴 편지를 보니 겉면에 ‘통곡’ 두 자가 쓰여 있었다. 면이 적과 싸우다 죽었음을 알고, 간담이 떨어져 목 놓아 통곡하였다. 하늘이 어찌 이다지도 어질지 못하는가? 간담이 타고 찢어지는 것 같다. 내가 죽고 네가 사는 것이 이치에 마땅한데, 네가 죽고 내가 살았으니 어쩌다 이처럼 이치에 어긋났는가? 천지가 깜깜하고 해조차도 빛이 변했구나. 슬프다, 내 아들아! 나를 버리고 어디로 갔느냐! 영리하기가 보통을 넘어섰기에 하늘이 이 세상에 머물게 하지 않은 것이냐! 내가 지은 죄 때문에 화가 네 몸에 미친 것이냐! 내 이제 세상에서 누구에게 의지할 것이냐! 너를 따라 죽어서 지하에서 같이 지내고 같이 울고 싶지만 네 형, 네 누이, 네 어머니가 의지할 곳이 없으므로 아직은 참고 목숨을 이을 수 밖에 없구나! 마음은 죽고 껍데기만 남은 채 울부짖을 따름이다. 하룻밤 지내기가 한 해를 지내는 것 같구나.

— 난중일기 1597년 10월 14일

사후편집

이면의 묘는 현충사에 있다.

이면이 등장하는 작품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