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범윤

이범윤(한국 한자李範允, 1856년 12월 29일(1856-12-29) ~ 1940년 10월 20일(1940-10-20))은 대한제국 변계경무서 예하 북변간도관리사 직책을 지낸 구한말 시대 복벽주의 성향 독립운동가이다. 본관전주(全州)이다.

이범윤
李範允
대한제국 변계경무서 예하 북변간도관리사
(大韓帝國 邊界警務署 隸下 北邊間島管理使)
임기 1903년 5월 3일 ~ 1905년 12월 22일
군주 대한제국 조선 고종 이형
섭정 총리대신 이근명(前)
대한국민의회 부통령
(大韓國民議會 副統領)
임기 1919년 2월 1일 ~ 1919년 3월 21일
군주 순종 이척 (前 대한제국 군주)
대통령 손병희 국민의회 대통령
의장 문창범 국민의회 의장 겸 국무총리
부의장 김철훈 국민의회 부의장 겸 부총리
총독 의친왕 이강 (前 대한제국 대리청정공)
총리 문창범 국민의회 의장 겸 국무총리
부총리 김철훈 국민의회 부의장 겸 부총리
수상 문창범 국민의회 의장 겸 국무총리
부수상 김철훈 국민의회 부의장 겸 부총리
대한국민의회 부통령 겸 대통령 권한대행
(大韓國民議會 副統領 兼 大統領 權限代行)
임기 1919년 3월 21일 ~ 1919년 9월 11일
군주 순종 이척 (前 대한제국 군주)
의장 문창범 국민의회 의장 겸 국무총리
부의장 김철훈 국민의회 부의장 겸 부총리
총독 의친왕 이강 (前 대한제국 대리청정공)
총리 문창범 국민의회 의장 겸 국무총리
부총리 김철훈 국민의회 부의장 겸 부총리
수상 문창범 국민의회 의장 겸 국무총리
부수상 김철훈 국민의회 부의장 겸 부총리
신상정보
국적 대한제국
출생일 1856년 12월 29일(1856-12-29)
출생지 조선 경기도 고양
사망일 1940년 10월 20일(1940-10-20) (83세)
사망지 일제 강점기 조선 경성부
본관 전주(全州)
학력 한학 수학
경력 독립운동가 출신의 권업회 총재
정당 무소속
부모 이경하(부), 재령 이씨 첩실(모)
형제 이범진(이복 서형)
친인척 이인달(조부)
이위종(이복 조카)
종교 무종교
웹사이트 이범윤 - 두산세계대백과사전

무위대장을 지낸 조선 말기의 무관(武官) 출신인 이경하(李景夏)의 아들이고 구한말정치가외교관을 지낸 이범진(李範晋)의 아우이며 구한말외교관을 지낸 이위종(李瑋鍾)의 숙부이다.

생애편집

1856년 12월 29일 경기도 고양에서 출생하여 지난날 한때 경기도 양주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으며 훗날 한성부에서 성장하였다. 1875년부터 1880년까지 5년간 청나라 만주 옌지에 체재한 그는 1887년 음서 천거로써 관료가 되어 이후 구한 말 간도 문제로 청나라와의 갈등 끝에 변계경무서가 설치된 뒤 1902년 간도시찰로 임명되기까지의 경력에 대해서는 그다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는 간도로 파견되었고, 이듬해(1903년)에는 간도관리사로 임명되어 간도 지역 조선인에 대한 행정 업무를 전담하였다. 이범윤은 이 지역의 포수들로 자위적 성격의 군대인 사포대를 조직하였는데, 이 사포대가 향후 간도 지역 의병운동의 한 기반이 되었다.

간도관리사로 재직 중이던 1904년 러일 전쟁이 발발하자 그는 러시아 군대와 연대하여 함경북도 지역에서 일본군과 교전했다. 러일 전쟁이 일본의 승리로 끝나자 1906년 이범윤은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을 이끌고 러시아령으로 망명했다.

이 지역에 이미 이민해 와 있었던 거부 최재형의 도움으로 의병 부대(연추의병부대)가 조직되었으며, 러시아제 무기로 무장할 수 있었다. 의병 지원을 위한 동의회(총장 최재형)와 창의회를 결성하고 연추의병부대 총독에 취임했다. 안중근엄의섭 등이 참가한 연추의병부대는 러시아령에 머물면서 수 차례 국내에 진입하여 많은 전과를 올렸다.

1909년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 이후 그는 유인석13도의군(十三道義軍, 도총재 유인석)에 참가했다. 의병장 출신들이 중심이 된 13도의군에는 안창호이갑 등 계몽 운동 계열의 인사들도 참가하여 연합조직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이범윤이 창의군 총재를 맡은 이 조직과 한일 병합 조약 무효를 주장하는 성명회(聲明會)는 러시아 정부에 의해 해체되었다. 이범윤은 러시아 당국에 체포되어 7개월간 유형 생활을 했다.

1911년 연해주로 돌아와 홍범도, 이상설 등 이 지역의 독립 운동가들과 권업회(회장 최재형)를 조직해 얼마후부터 총재를 맡았고, 《권업신문》도 발행했다.

최후편집

그는 의군부대한독립군단의 총재, 신민부의 참의원 원장으로 추대되는 등 북간도와 연해주 지역 무장 독립 운동을 진행하다가 1940년 경성부에서 병사했다.

사후편집

가족 관계편집

  • 할아버지: 이인달(李寅達)
  • 아버지: 이경하(李景夏)
  • 이복 형님: 이범진(李範晋)

같이 보기편집

참고 자료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