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메뉴 열기

이범진 (1852년)

이범진(李範晋, 1852년 9월 3일 ~ 1911년 1월 26일)은 조선 말기의 정치가이며 순국지사로 자(字)는 성삼(聖三)이며 세종대왕의 다섯째 아들인 광평대군(廣平大君)의 17대손이며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생애편집

무위대장을 지낸 조선 말기의 무관(武官) 이경하(李景夏)의 아들이고 구한말외교관 이위종(李瑋鍾)의 아버지이며 구한말의 독립운동가 이범윤(李範允)의 형이다.

관직 생활편집

고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명성황후의 총애를 받았고 1895년 명성황후가 친러 정책을 쓸 때 대신 서리가 되었으나, 그 해 8월 을미사변이 일어나 친일파가 정권을 잡음으로써 파면되었다. 그 해 10월에 다시 정권을 잡으려다 실패하고 러시아로 망명하였으나 1896년 귀국하여 러시아와 힘을 모아 친일파를 몰아내고 새로운 내각을 세워 법무 대신이 되었다.

그러나 친일파 등으로 인해 신변이 위험해지자 자원하여 1896년~1897년 주미 공사로 임명받아, 그 후 3년 동안 미국과 유럽나라의 대한제국의 외교관 역할을 했다. 1899년에는 러시아, 프랑스 등 유럽 3개국 주재 겸임 공사가 되었고, 1900년에는 주러시아 공사로 전임되어 독일 오스트리아 프랑스 공사를 겸임했다. 일본이 대한제국에 대한 압력이 높아지자 일본 견제를 위한 러시아 외교 강화 차원에서 1901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상주공사로 파견되어 초대 주 러시아 상주 공사관으로써 대한제국의 독립을 위해 투쟁했다. 대한제국과 러시아의 외교를 주로 담당하며, 특히 당시 일제의 감시 아래서 러시아와 대한제국의 외교 및 러시아의 니콜라이 2세 황제에게 비밀리에 고종 황제의 친서를 전하는 등의 중요한 임무도 수행했다.

러시아에서의 활동편집

1905년 일제가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고 각국 주재 한국공사들을 소환하자 이범진은 이에 불응하고 고국 소환에 응하지 말라는 고종의 밀서대로 페테르부르크에 체류하면서 일제에 의해 러시아 공사관이 폐쇄된 이후에도 페테르부르크 시내의 아파트에 옮겨 살면서 1910년까지 여권발급 등 공사업무를 계속하였다. 동시에 비공식 외교활동을 통해 국권 회복에 노력했다. 을사늑약에 항거하고, 1907년 헤이그에서 만국평화회의가 개최될 때 대한제국의 헤이그 특사 파견을 후원했는데, 헤이그에 갈 수 있도록 특사들의 안전을 러시아 황제에게 보호를 요청했다. 그 밖에 연해주 지역의 항일운동을 적극적으로 후원했는데. 그 중에는 해조신문 후원과 동의회의 조직과 활동에 크게 이바지 하였고,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였다.

후대에 이범진을 당시 러시아의 정치적인 친분 때문에 친러파로 평가하기도 하지만 그 당시 대한제국의 상황은 일본제국의 맞서 외교적으로 러시아의 힘이 필요했으며, 러시아 입장에서도 한반도의 영향력 강화하는 차원에서 일본과의 대립하는 사항에서 대한제국의 외교관계는 중요했다. 또한 러시아도 조선의 주변의 열강들처럼 조선의 여러 자원과 철도부설 등의 이득을 취하려고 했으며, 실제로 압록강 주변의 산립채벌권을 얻으려는 했다. 하지만 이범진은 러시아의 이러한 행보에 이의 반하여 응하지 않았다. 이는 그가 단순한 친러세력이 아닌 조국의 이익에 우선시 여긴다는 점에서 그 당시의 조선의 친일 세력과는 대조적인 태도였음을 알 수 있다.

최후편집

러일 전쟁 후, 모든 공직에서 물러나 러시아 방면에서 방랑하다가 1911년 1월 13일 한일합병 이후 나라 읺은 슬픔으로 밧줄로 목을 맨 다음 머리에다 권총 3발을 쏘고 자결했다. 반일투쟁의 수단으로 자결을 택한 것으로, 당시 서울 주재 러시아 총영사 소모프는 이범진의 자살은 “적들에게 가장 잔인하고 확실한 복수를 한 것”이라고 평가했고, 그의 죽음을 애도 했다. 그의 유해는 페테르부르크에 안장되었다.

사후편집

  • 그의 아들 이위종은 1907년 헤이그 특사의 일원으로 을사늑약이 대한제국의 고종황제의 승인 없이 강압에 의해 체결된 것이므로 무효임 주장하는 대변인으로 활약한 인물이다. 1911년 아버지 이범진의 자결 뒤 육군사관학교에 입교, 1916년 동부 유럽 전선에 배치되었다. 1917년부터 1924년까지의 자신의 행적이 담긴 자서전을 일종 보고서로서 소련 공산당에 제출하였고, 이후의 행적은 알 수 없다. 이위종은 '블라디미르 세르게예비치 리'라는 러시아 이름도 사용했다.

가족 관계편집

  • 고조부 : 이의헌(李義獻)
    • 종증조부 : 이문연(李文淵)
      • 재종조부 : 이인두(李寅斗)
    • 증조부 : 이복연(李復淵)
      • 할아버지 : 이인달(李寅達)
        • 백부 : 이원하(李元夏)
        • 숙부 : 이정하(李貞夏), 재종조부 이인두에게 출계
        • 아버지 : 이경하(李景夏)
          • 동생 : 이범윤(李範允)
            • 장남 : 이기종(李璣鍾)
            • 차남 : 이위종(李瑋鍾)

참고 자료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