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영 (독립운동가)
이석영(李石榮, 1855년 ~ 1934년 2월 16일)은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이다.
1855년에 이조판서를 지낸 이유승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일본이 나라를 빼앗자 이석영은 자신의 농토를 팔아 망명 생활비를 마련하여 형제들하고 같이 만주로 망명하였으며, 경학사·신흥무관학교의 창설 운영자금으로 헌신하였다. 독립운동 자금 등으로 재산을 다 쓴 이후 이석영은 중국 각지를 홀로 떠돌아다녔다. 1934년 중국 상하이에서 80세를 일기로 사망했다.[1] 동아일보 1934년 2월 28일자 기사. 이석영의 장남인 이규준(1899 ~ 1927)도 독립운동가로 활동했으며, 일제의 밀정인 김달하 등을 암살하고 한커우(漢口)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29세의 나이로 암살당해 사망하였다.
가족 관계 편집
- 증조 할아버지: 이정규(李廷奎)
- 할아버지: 이계선(李啓善)
- 13촌 백부, 양아버지: 이유원(李裕元, 1814년 ~ 1888년)
- 아버지: 이유승(李裕承, 1835년 ~ 1907년)
- 어머니: 동래정씨
- 서모: 이름 미상
- 처:
기타 편집
다른 아들인 이규서는 숙부인 이회영을 일본경찰에 밀고하여 체포당하게 했다.[3] 이규서는 1932년 10월 이달(李達) 등과 함께 밀고자로 지목되어 오던 연충열(延忠烈) 등 2명과 함께 백정기에게 암살당한다.
각주 편집
외부 링크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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