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흥(李壽興, 1905년 5월 27일 ~ 1929년 2월 27일)은 일제강점기독립운동가이다.

이수흥
李壽興
대한민국 임시정부군무부 행정관
임기 1926년 4월 6일 ~ 1926년 5월 20일
군주 순종 이왕 이척 前 대한제국 군주
섭정 의친왕 이강 前 대한제국 대리청정공
주석 양기탁 대한 임정 국무령 권한대행 서리
이동녕 대한 임정 국무령 권한대행
안창호 대한 임정 국무령 권한대행 서리
이동녕 대한 임정 국무령 권한대행
홍진 대한 임정 국무령 권한대행
총리 이동녕 대한 임정 국무총수상
수상 이동녕 대한 임정 국무총수상
장관 오영선 대한 임정 군무총장 직무대행 서리
차관 이춘숙 대한 임정 군무차장
사령관 양세봉 참의부 총반 직무대리
참모장 의민태제 영친왕 이은 前 대한제국 황태제

이름
별명 아명(兒名)이좌성(李佐聖)
불교 승려 시절 법명(法名)성좌(聖佐)
신상정보
출생일 1905년 5월 27일
출생지 대한제국 경기도 이천군 이천읍 창전리
(現 대한민국 경기도 이천시 창전동)
사망일 1929년 2월 27일(1929-02-27)(23세)
사망지 일제강점기 경성부 서대문형무소
(現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천연동 서대문형무소 터)
정당 무소속
본관 연안(延安)
부모 이일영(부), 이씨 부인(모)
종교 불교
군사 경력
복무 대한민국 임시정부 육군 주만참의부
복무기간 1924년 ~ 1927년 1월 18일
근무 대한육군주만참의부 제2중대
최종계급 대한독립군 상사
지휘 참의부 2중대 예하 특무정사
주요 참전 1925년 고마령 전투
상훈 1962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경기도 이천군 이천읍 창전리에서 출생하여 지난날 한때 황해도 황주를 거쳐 전라북도 전주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고 본관연안(延安)이며, 아명(兒名)이좌성(李佐聖)이고 불교 승려 시절 법명(法名)성좌(聖佐)이다.

생애 편집

이천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였고 한때 불교 승려 생활을 했다가 환속을 한 선생은 1923년 만주로 망명해 대한통의부에 가입하고 지린 성(吉林省) 어무 현(額穆縣)의 신명무관중학교(新明武官中學校)에서 군사교육을 받았다.

이후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직속부대로 육군주만참의부(陸軍駐滿參議府)가 결성되자 1924년에 가입해 제2중대 특무정사(特務正士)로 활동했다.

1925년 일제 경찰의 기습 공격으로 참의부원 다수가 전사한 고마령(古馬嶺) 참변 이후 이수흥 선생은 독립운동에 활기를 불어넣고자 1926년 5월 국내로 돌아와 의열 투쟁을 시작했다.

선생은 황해도 평산군, 경성부, 경기도 안성군, 여주군, 이천군 등을 무대로 군자금을 모집하고 일제 순사·친일 부호·친일 토호 처단과 면사무소·헌병분대·경찰관 주재소를 공격하는 등 독립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전개했다.

일경의 삼엄한 감시 속에서도 선생의 활동은 1926년 11월까지 계속됐으나 반역자의 밀고로 끝내 일경에 붙잡혀 1928년 7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사형을 언도받았다.

선생은 일제 재판부에 목숨을 구걸하지 않겠다며 공소를 포기하고 1929년 2월 27일, 서대문형무소에서 교수형으로 순국하였다.

사후 편집

대한민국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학력 편집

각주 편집

외부 링크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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