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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남(李英男, 1563년 ~ 1598년)은 조선 중기의 무신이다. 본관은 전의.

생애편집

이영남 장군은 문의공의 10대 손이다. 1580년(선조 12년)에 무과에 급제하시고 첫 부임지가 경상도 우수사 관하 소비포항 해안대장으로 재수 받았다. 남해안 거재도 가덕도 율포 만호 한산도에 해안대장을 두루 역임하였다. 임진왜란시 일본군이 함정 수백 척을 이끌고 우리나라 해안 곳곳으로 기습침공하자 우수사 원균과 좌수사 박흥이 싸움도 해보지도 않고 겁을 먹고 배를 모조리 불태운 다음 육지로 도망치었다. 그러나 원균의 시하에 있는 이영남 장군은 물러서지 않고 해안을 지키며 옥포해상에서 왜적 함 20여 척을 격멸하고 이어 거재 해안으로 진입하는 왜적함을 차단하며 끝까지 싸웠다.

1807년(순조7년) 정묘년 이영남(李英男) 장군에게 병조판서(兵曹判書)가 증직(贈職)되었는데 그 원문은 다음과 같다.

敎旨嘉善大夫行加德鎭僉使加德鎭兵馬僉節制使李英男贈資憲大夫兵曹判書兼知義禁府訓鍊院事者嘉慶 十二年 月日忠節卓異贈職事承傳 전의이씨(全義李氏)의 이영남(李英男) 장군은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전주부윤(全州府尹)을 지낸 이정란(李廷鸞)의 6촌동생이며 제 12대 삼도수군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 이정표(李廷彪)의 4촌동생이다. 우의정(右議政)을 지낸 충정공(忠貞公) 만암(晩庵)이상진[李尙眞:1614(광해군6)∼1690(숙종16)]이 이영남(李英男) 장군의 9촌 증손뻘인데, 임진왜란(壬辰倭亂)때에 무장(武將)으로서 전공(戰功)을 세워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오른 이영남(李英男) 장군의 묘표(墓表)을 지었다.

좌수사 이순신 장군은 3도 통제사가 되어 해안을 지휘 통솔하면서 최후까지 해안을 방어한 이영남 장군을 해안 전술을 높이 평가하고 경상도 우수 선봉대장으로 임명하였다. 이순신 장군의 부하가 되어 이순신 장군과 같이 남해 노량대전에서 적함 2백 여척을 대파하고 이순신 장군과 때를 같이하여 장열하게 해상에서 전사하시고 증 병조판서가 되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이영남 장군을 나라를 지키신 훌륭한 공을 높이 평가하고 국비로 전주시에 사당을 건립하고 사당의 명을 선충사(宣忠祠)로하고 편액을 집접 친필하였다.

사후편집

묘소는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면에 있으며 가리포첨사로 노량해전에 참여했고 전라남도 완도군 고금도 충무사에는 이순신과 함께 모셔져 있다. 현재 전라북도 전주시 중화산동 예수병원 근처에 그를 모시는 절이 있다.

관련 작품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