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조
이해조(李海朝, 1869년 2월 27일 ∼1927년 5월 11일)는 일제강점기의 언론인이자 소설가이다. 호는 열재(悅齋), 이열재(怡悅齋), 동농(東濃), 필명으로는 선음자(善飮子), 하관생(遐觀生), 석춘자(惜春子), 신안생(神眼生), 해관자(解觀子), 우산거사(牛山居士)가 있다. 경기도 포천에서 태어났다. 신소설의 창시자로 불린다. 《제국신문》, 《황성신문》, 《매일신보》에 소설을 연재하였다.
이해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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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정보 | |
출생 | 1869년 2월 27일 |
사망 | 1927년 5월 11일 | (58세)
직업 | 언론인, 소설가 |
생애
편집본관은 전주 이씨, 조선 제16대 임금 인조의 셋째아들인 인평대군의 10대손 이철용(李哲鎔)[1]과 청풍 김씨의 맏아들이다. 1907년 《제국신문》에 입사하고, 대한협회에 가입하여 교육부 사무장을 역임하였다. 이 때부터 《제국신문》에 신소설 《고목화》, 《빈상설》 등을 연재하였고, 1908년에는 《고목화》, 《빈상설》, 《홍도화》, 《구마검》 등의 단행본이 발간되었다. 1910년 《매일신보》에 입사하여 《화세계》, 《화의 혈》, 《옥중화》 등 여러 작품을 《매일신보》에 연재하였다. 1913년 《매일신보》를 퇴사하였고, 1927년 5월 11일 사망하였다.
작품 활동
편집이해조는 신소설의 창시자로서 《제국신문》, 《황성신문》 등에 이름을 밝히지 않고 여러 신소설을 연재하였으며, 쥘 베른의 《인도 왕비의 유산》(Les Cinq cents millions de la Bégum)을 일본어 번역을 중역하여 《철세계》[2]로 번역하기도 하였다. 특히 《춘향전》, 《심청전》, 《별주부전》 등의 소설을 《옥중화》, 《강상련》, 《토의 간》 등의 신소설로 고쳐 썼다. 1908년 1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제국신문》에 연재하여 1911년 단행본으로 발간된 《쌍옥적》은 한국 최초의 ‘정탐 소설’, 즉 추리 소설로 불린다. 그 밖의 대표작으로는 《월하가인》, 《탄금대》, 《봉선화》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