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철 (비서)

대한민국의 정치인

이호철(1958년~ )은 대한민국의 전 정무직공무원, 기업인이다.

이호철
대한민국의 민정수석비서관
대통령 노무현

신상정보
출생일 1958년 12월 21일(1958-12-21)(65세)

부산대학교 학생운동권 출신으로[1], 노무현의 1988년 국회의원 선거, 1992년 국회의원 선거, 1995년 부산시장 선거, 2000년 국회의원 선거, 2002년 대통령 선거 과정을 도왔다.[2]

경남고등학교와 부산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했으며 노무현 정부 초기 대통령비서실 민정비서관을 역임했다. 2004년 4월 사임하였다가, 2005년 2월 제도개선비서관으로 청와대 근무에 복귀했다. 2005년 8월부터 국정상황실장을 맡아왔다. 2007년 12월 21일 대통령 노무현은 이호철을 민정수석비서관에 내정했다.[3]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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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1977년 부산대학교에 입학해 1981년 행정학 학사 학위를 받았다.[2]

1982년 부림사건으로 구속되었으며, 변호사로 노무현을 접했다. 1985년 부산민주시민협의회 사회부장, 홍보부장을 1987년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부산본부 홍보부장 등으로 변호사 노무현과 함께 활동했다.[2]

1989년에는 국회의원 노무현 보좌관으로 활동했다.[2][4] 노무현은 이호철에게 자신의 집 문간방을 내주어 살게 했다.[5]

1992년 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노무현이 패하자 부산에서 입시학원을 운영하였고, 그 자금을 바탕으로 부산대학교 앞에 여행사를 차려[6][7] 배재항공부산 대표를 지냈다.[8][9] 배재항공여행사 지점장[10] 이호철은 5000만원 상당 가액인 ㈜배재항공여행(「㈜마니투어」로 상호 변경) 비상장주식 5000주를 보유하였었다.[11]

2003년 2월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실 민정1비서관으로 2003년 12월까지 재직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민정비서관, 제도개선비서관, 국정상황실장, 민정수석비서관을 역임했다.[2]

노무현의 대통령 퇴임 후엔 봉하마을에서 친환경 생태농업, 마을 가꾸기 등 퇴임 후 활동을 도왔으며 노무현재단 상임운영위원으로 재직했다.[2]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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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고형규 (2003년 2월 17일). “청와대 비서관 진용 특징”. 《연합뉴스》 (한겨레). 
  2. 노무현재단 (2011년 12월 7일). 이호철(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 민정수석비서관 민정수석비서관) 2차 구술 (PDF) (보고서). 재단법인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3. 청와대 (2007년 12월 21일). “청와대 민정수석 이호철, 홍보 천호선, 인사 정영애”.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대한민국 정부(문화체육관광부)). 
  4. 전석운 (2003년 2월 17일). “개혁 주도세력이 바뀐다…청와대 비서관 인선 안팎”. 《국민일보》 (네이버 뉴스). 
  5. 이연홍 (2003년 1월 5일). “[정치보기] 인권 눈뜨게한 '정신적 형제'. 《중앙일보》. 
  6. 김병일 (2003년 3월 23일). “盧대통령, 정계입문후 15년간 독특한 용인술 사용”. 《한국경제》 (네이버 뉴스). 
  7. 김의겸 (2003년 1월 21일). “그들이 서울행 열차를 탄다”. 《한겨레》 (한겨레21). 
  8. “노무현 정권의 파워엘리트 WHO’S WHO”. 《동아일보》 (신동아). 2003년 3월 26일. 
  9. 박용범 (2003년 2월 12일). “청와대직할 사정팀 운영”. 《매일경제》 (네이버 뉴스). 
  10. 고형규 (2003년 2월 17일). “<청와대 비서관 진용 특징>-3”. 《연합뉴스》 (네이버 뉴스). 
  11.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 (2006년 2월 28일).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공고제2006-8호(2006년도정기재산변동사항공개목록, 대통령비서실) (보고서). 37쪽(원: 42): 행정안전부 대한민국 전자관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