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메뉴 열기

이호(李澔, 일본식 이름: 李家 澔 리노이에 히로시, 1914년 2월 7일 ~ 1997년 5월 24일)는 검사를 지낸 법조인, 법률가이며 대한민국정치가였고 예비역 대한민국 육군 준장이었다.

Picto infobox military.png
이호
李澔
생애 1914년 2월 7일 ~ 1997년 5월 24일 (84세)
출생지 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영천
사망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본관 영천(永川)
별명 (號)는 가세(茄笹)
일본식 이름은 리노이에 히로시(李家 澔)
종교 불교
배우자 성낙은
자녀 슬하 5남 1녀
복무 대한민국 육군
복무 기간 1949년 ~ 1955년
최종 계급 대한민국 육군 준장
근무 육군본부, 국방부
지휘 육군본부 군법무차감
육군본부 군법무감
육군본부 계엄사령부 부사령관
육군본부 헌병감
국방부 차관
주요 참전 한국 전쟁
기타 이력 법무부 장관
내무부 장관
일본 주재 대한민국 대사
국가보위입법회의 의장
대한적십자사 총재
자유민주연합 외교안보행정특임위원(1995년)

목차

생애편집

경상북도 영천에서 지주의 아들로 태어났다. 가정 형편이 부유하였기에 일찍 일본으로 유학하여 立命館中學를 거쳐佐賀高等學校를 졸업한 뒤 도쿄제국대학 법학부에 입학했다. 그는 이 학교에 재학 중이던 1939년에 이미 일본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한 수재였다.

도쿄제국대학 졸업 후 귀국하여 경성지방검찰청 검사, 경성고등검찰청 검사로 일했고, 광복 후에도 경력을 인정받아 서울고등검찰청 검사(1946), 대검찰청 검사(1948), 내무부의 초대 치안국장(1949) 등으로 계속 승진했다.

1949년 육군 법무장교 중령 임관하여 1950년 한국 전쟁 때는 육군본부 법무감(준장)과 육군본부 계엄사령부 부사령관, 정전위원회 대표 등을 지냈고, 1953년 국방부 차관에 올랐다. 1955년 대한민국 육군 준장 예편 이후 제1공화국 법무부 장관(1955), 4·19 혁명으로 들어선 과도 정부의 내무부 장관(1960), 제3공화국의 내무부 장관(1967), 주일본 대사(1971)를 지냈다. 12·12 군사 반란 이후에는 국가보위입법회의 의장을 맡았으며, 대한적십자사 총재도 지냈다.

1981년 국정자문위원회 위원에 위촉되었다. 이후 1987년 11월 4일, 총리공관에서 열린 만찬에서 당시 국무총리 김정렬의 초청을 받았다. 만년에는 1995년 자유민주연합 외교안보행정특임위원 직위를 잠시 역임하였다.

장남인 이동서울시립대학교 총장을 지내는 등 5남 1녀가 모두 사회적 성공한 가문으로 유명하다.

학력편집

비학위 수료편집

가족 관계편집

같이 보기편집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