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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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재판(人民裁判)은 공산주의 국가 등애서 시행된 인민에게 공개형식으로 진행된 재판을 말한다. 반공주의자, 자본가, 반동주의자 등에 대한 처벌, 그리고 헌법이나 법률, 공산당 강령을 위반한 범법자에 대한 처벌 여부를 결정한다. 인민재판은 공개된 장소에서 범죄자에게 사형 등 잔인한 형벌을 내리는 재판 형태이다. 즉심 재판으로 변론 없이 이루어지는데, 주로 공산주의 국가들에서 시행되었다. 북한에서는 1946년 12월 1일부터 시작된 이 인민재판은 6.25 전쟁 발발 후 인민군이 장악한 남한 지역에서도 열려 악질 지주나 자본가, 반공주의자, 우익 경찰이나 군인들이 ‘반동분자’나 ‘인민의 적’이라는 이름으로 처형되었다. 흔히 이런 재판이 열릴 때는 누군가가 주동자로 인민을 흥분시키거나 분위기를 주도하면 인민들은 한 명 두 명 여기에 찬동하여 ‘죄인’들에 대한 처벌에 동참하게 된다. 만약 적극적으로 ‘죄인’을 변호하면 그 역시 반동으로 몰릴 수 있기 때문에 대놓고 나서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러다보니 죽을죄를 지은 자들이 죽는다면 그렇다 치더라도 억울하게 이런 저런 이유로 인민의 손에 죽은 자도 부지기수였다.

다음은 한국 전쟁 당시 박찬웅이 쓴 일기의 일부분

“찬경이가 그 근로대에서 인민재판이 벌어졌던 얘기를 한다. 근로대에 나온 서울대 문리대 학생 한 명이 인민재판을 받은 것이다. 전에 극좌라는 이유로 그에게 얻어맞은 일이 있는 그의 친구가 그를 고발한 것이다. 그 친구가 그 학생의 죄상을 말하고 모든 근로대원에게 처치 여하를 물으니 모두 “죽여라, 죽여라!”하고 소리쳤다 한다. 그래서 인민군 병사에게 통고를 하니 인민군 병사가 나와서 “다시 한 번 잘 생각해서 결정해 달라”고 모든 학생에게 말했다는 것. 그러자 학생들이 또 “죽여라, 죽여라!”하고 소리치므로 그 학생에게 유언을 말하라고 했다 한다. 그러니까 그 학생이 “나는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고 그 죗값을 치르기 위해 지금 의용군에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죽으라고 한다면 당연히 죽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건투와 하루 빨리 전 조선의 해방을 빌 뿐입니다. 조선인민공화국 만세!”라고 말하고 바로 처형됐다는 것이었다…. 그가 전에 극좌 학생을 때렸다니, 이 처형된 학생은 국가 권력을 등에 업고 주먹을 휘두른 극우 깡패 학생이었는지도 모른다. 죽음을 앞에 놓고 한 그의 마지막 한마디는 진심일지도 모르고 살기 위해서 한 동정 작전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떻든 간에 학생들은 그 말을 받아들여 그를 살렸어야 했다. 아니, 학생들에게 이런 재판을 할 권리가 있을 수 없다! 사람의 생명이 귀중한 것을 이 민족은 언제나 돼야 깨닫게 될 것인가!”

– 박찬웅, (6.25일지) 중, 지식산업사[1]

같이 보기편집

  1. “한국전쟁 때의 인민재판 그리고 지금···”. 2019년 3월 19일. 2020년 6월 15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