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메뉴 열기

임천 조씨(林川趙氏)는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임천 조씨 (林川 趙氏)
관향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시조 조천혁(趙天赫)
주요 집성촌 대전광역시 서구
충청남도 홍성군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충청남도 부여군 세도면
충청남도 예산군 삽교읍
주요 인물 조지서, 조정만, 조명리, 조덕윤, 조병호, 조동식, 조용순, 조완규, 조부영, 조용무, 조용필, 조동호, 조배숙, 조영구
인구(2015년) 14,258명

목차

역사편집

임천조씨(林川趙氏) 시조(始祖) 조천혁(趙天赫)의 본명은 조수강(趙守康)이고, 북송 태조 조광윤(趙光胤)의 손자인 기왕(冀王) 조유길(趙惟吉)의 다섯째 아들이라고 한다. 송나라에서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하고 서두공봉관(西頭供奉官)이 되었으나, 979년(송 태종 4)에 위왕(魏王)이 화를 입자 숙부 조유고(趙惟固)와 함께 난을 피해 고려에 도망쳐서 이름을 천혁(天赫)으로 고치고 임천에 정착하게 되었다고 한다. 조천혁(趙天赫)은 고려 현종강감찬(姜邯贊) 장군과 함께 거란군(契丹軍)을 격파한 공으로 가림백(嘉林伯)에 봉해졌다고 한다.

임천 조씨는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42명을 배출하였다.[1]

인물편집

  • 조지서(趙之瑞, 1454년 ~ 1504년) : 11세손. 1474년(성종 5) 식년문과와 1479년 문과중시에 급제하여 형조좌랑이 되었고, 건주위(建州衛) 정벌을 위하여 서정대장(西征大將) 어유소(魚有沼)의 종사관으로 참가했으나, 어유소의 파병(罷兵)과 관련된 전명(傳命)을 잘못하여 고신을 몰수당하고 외방에 유배되었다. 그 뒤 서반직에 복직된 뒤 교리·형조정랑·지평·응교 등을 지냈으며, 1495년(연산군 1) 창원부사로 파견되었다가 곧 사직하였다. 1504년 갑자사화에 연루되어 참살되었다. 성종 때 청백리(淸白吏)에 녹선되었다.
  • 조정만(趙正萬, 1656년 ~ 1739년) : 1681년(숙종 7)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1735년 지돈녕부사·한성부판윤과 공조·형조의 판서를 역임하고 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저서로는 『오재집(寤齋集)』이 있다.
  • 조명리(趙明履, 1697년 ~ 1756년) : 1731년(영조 7) 정시문과(庭試文科)에 을과로 급제하여 도승지·이조참판·강원도관찰사·대사헌 등을 역임한 뒤 1755년 판윤이 되었다. 시호는 문헌(文憲).
  • 조덕윤(趙德潤, 1747년 ~ 1821년) : 1775년(영조 51)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1815년 병조판서에 올랐으며, 한성부판윤·우참찬 등을 역임하였다. 시호는 효정(孝貞).
  • 조부영(趙富英, 1936년 ~ ) : 제13·14·16대 국회의원. 제16대 국회 부의장.
  • 조용필(趙容弼, 1950년 ~ ) : 가수
  • 조배숙(趙培淑, 1956년 ~ ) : 제16·17·18·20대 국회의원.

항렬자편집

16세 17세 18세 19세 20세 21세 22세 23세 24세 25세 26세 27세 28세 29세 30세 31세 32세 33세 34세 35세 36세
형(馨) 기(期)
경(景)
정(正) 명(明) 덕(德) 학(學) 재(在)
기(基)
호(鎬) 한(漢) 식(植) 용(容) 규(圭)
영(英)
진(鎭) 택(澤) 수(秀) 찬(燦) 준(埈) 석(錫) 윤(潤) 환(桓) 희(熙)

인구편집

  • 1985년 2,511가구 10,448명
  • 2000년 3,476가구 11,040명
  • 2015년 14,258명

함께 보기편집

각주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