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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지(子之, ? - 기원전 314년)는 춘추 전국 시대 연나라정치인이다. 키가 8척에 달했고 몸이 비대한 반면 동작은 민첩했다.

생애편집

기원전 320년에 즉위한 연왕 쾌()에 의해 기원전 320년상국으로 임명된다. 자지는 결단력이 있었고 다른 신하들을 잘 관리감독하여 연왕 쾌의 신임을 얻게되었다. 이에 연왕 쾌는 연로했던 점도 있어 점차 국사를 돌보지않게 되었다. 왕으로서의 직무에 흥미를 잃어가던 연왕 쾌는 녹모수(鹿毛壽)의 말을 듣고 태자 평(平)을 폐하고 자지에게 선양하고 만다.

왕위에 오른 자지는 급진적인 개혁을 실시하여 지배층의 불만을 샀고, 연왕 쾌의 아들인 세자 평(平)은 이에 대항하여 장군 시피(市被)와 손잡고 왕궁을 포위했으나, 자지는 반격하여 크게 이기고 세자 평과 시피 모두 전사하고 만다. 이때 연나라 백성들은 이 전투를 구경하기 위해 구름떼같이 몰려들었으며 어느 쪽 군대가 이기느냐에 대해 도박판까지 벌어졌다.

이 무렵 제나라에서는 맹자가 머물러 있었는데 맹자는 자지가 난을 일으켜 연나라가 뒤숭숭하다는 것을 제 선왕에게 보고하였고, 이에 선왕은 장군 광장(匡章)에게 10만의 병력을 줘 보하이 만을 따라 연나라로 쳐들어가게 했다. 자지에 대한 불만이 극에 달했던 연나라 백성들은 광장이 쳐들어오기도 전에 성문을 열어놓고 기다렸으며 자지의 부하 병사들도 하나 둘씩 도망쳤다.

몇 명 남지 않은 병력을 이끌고 광장과 싸우던 자지는 결국 중상을 입었는데 그 와중에도 제나라 병사 100여명을 쳐죽인 끝에 힘이 다해 죽었다. 광장은 자지의 시체에서 옷을 벗긴 후 커다란 장독에 집어넣고 젓갈을 담가버렸다. 한편 연왕 쾌는 제나라의 침공에 놀라 목을 매달아 자살했으며 연나라는 제나라의 속국으로 전락하게 된다.

하지만 제나라 군대의 노략질에 질려버린 연나라 백성들은 결국 2년 만에 제나라 군대를 몰아내고 세자 평의 동생인 직(職)을 왕으로 세우니 곧 연 소왕이다.

외부 링크편집

전 임
연왕 쾌(燕王 噲)
제40대 중국 연나라의 군주
기원전 317년 ~ 기원전 314년
후 임
연 소왕(燕 昭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