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센 왕국(독일어: Königreich Sachsen)은 1806년부터 1918년까지 독일 중부에 있던 왕국이다. 영역은 현재의 작센주와 비슷하다. 다만, 1945년부터 오데르-나이세선 동쪽이 독일-폴란드 간 국경선이 되는 바람에, 강 동쪽에 있던 작센의 영토 일부가 폴란드로 넘어간 대신 강 서쪽에 있던 슐레지엔 땅이 작센에 편입되었다.

작센 왕국
Königreich Sachsen

1806년~1918년
 

 

국기
국기
문장
문장
표어신의 섭리를 기억하는
(라틴어: Providentiae Memor 프로위덴티아이 메모르[*])[1]
국가신의 축복 작센 (1815년)

작센리트 ("신이시여 나의 작센 조국과 함께 하시기를", 1842년)
1812년 작센 왕국
1812년 작센 왕국
수도드레스덴
정치
정치체제군주제
국왕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1세 (초대)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3세 (마지막)
역사
 • 왕국 승격1806년 1월 1일
 • 군주제 폐지1918년 11월 13일
지리
면적14,993 km2
인문
공용어독일어
인구
1910년 어림4,806,661명
인구 밀도320명/km2
경제
통화파피어마르크 (1914년부터)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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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6년 작센 선제후국나폴레옹과 동맹을 맺은 대가로 작센 왕국으로 승격하였다. 그러나 1815년 나폴레옹이 몰락하자 빈 조약에 따라 프로이센 왕국에게 영토의 40%를 할양하지 않으면 안되었는데, 할양한 영토 중에는 마르틴 루터종교개혁이 일어난 비텐베르크 같은 도시도 있었다.

1866년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에서 오스트리아 제국측에 가담하였으나, 프로이센군에 패하고 만다. 작센 왕국은 오스트리아측에 가담한 하노버 왕국, 헤센 선제후국, 나사우 공국, 프랑크푸르트처럼 프로이센에 합병당하지는 않았지만, 프로이센에 종속되어 북독일 연방에 가맹한다.

1871년 작센 왕국은 독일제국의 한 구성국이 되었다. 그러나 47년 뒤인 1918년, 독일제국의 패전으로 11월 13일에 국왕이 퇴위하여 베틴 가의 왕조가 끝났다.

역대 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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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센 왕국의 왕가는 베틴 가의 알베르트계이다.

작센 주민의 대부분은 프로테스탄트였고 국교도 프로테스탄트(루터 복음교, Evangelical Lutheran Church)였지만, 작센 왕가 사람들은 가톨릭 교도였다. 따라서 작센의 공주들은 오스트리아와 같은 가톨릭 왕실로 시집가는 경우가 많았다.

왕위 계승법은 준살리카법으로, 왕가에 남자 후계자가 남아있지 않을 때에만 공주가 왕위를 계승할 수 있었다.

작센의 역대 국왕
베틴 왕조
그림 및 사진 국왕 이름 재위 비고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1세 1806년~1827년 1807년부터 1813년 사이 바르샤바 공
  안톤 1827년~1836년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1세 국왕의 동생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2세 1836년~1854년 안톤 국왕의 조카
  요한 1854년~1873년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2세 국왕의 동생
  알베르트 1873년~1902년 요한 국왕의 아들.
  게오르크 1902년~1904년 알베르트 국왕의 동생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3세 1904년~1918년 게오르크 국왕의 아들. 1918년 퇴위됨.

1918년 이후 작센 왕가 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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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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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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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providentiae는 "선견지명, 예언, 신의 섭리(攝理)" 등을 뜻하는 라틴어 여성형 명사 providentia(f.)의 2격(속격) 단수 형태로 영어 단어 providence(섭리, 신의 뜻)의 어원이기도 하다. momor는 "기억하는, 염두에 두는"이라는 뜻의 라틴어 형용사로 주로 명사의 2격(속격)과 함께 사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