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군 덕천군사우

장군 덕천군사우(將軍 德泉君祠宇)는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에 있는, 조선 정종(재위 1398∼1400)의 열번째 아들인 덕천군을 모시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2012년 12월 31일 세종특별자치시의 문화재자료 제6호로 지정되었다.[2]

장군 덕천군사우
(將軍 德泉君祠宇)
대한민국 세종특별자치시문화재자료
종목문화재자료 제6호
(2012년 12월 31일 지정)
면적2,240m2[1]
수량1동
시대조선시대
소유전주이씨덕천군파종회
위치
장군 덕천군사우 (대한민국)
장군 덕천군사우
주소세종특별자치시 태산길 93-6
좌표북위 36° 33′ 8″ 동경 127° 11′ 34″ / 북위 36.55222° 동경 127.19278°  / 36.55222; 127.19278좌표: 북위 36° 33′ 8″ 동경 127° 11′ 34″ / 북위 36.55222° 동경 127.19278°  / 36.55222; 127.19278
정보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정보
덕천군사우
(德泉君祠宇)
대한민국 충청남도문화재자료(해지)
종목문화재자료 제61호
(1984년 5월 17일 지정)
(2012년 7월 1일 해지)
정보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정보

개요편집

조선 정종(재위 1398∼1400)의 열번째 아들인 덕천군을 모시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덕천군은 가난한 백성을 정성껏 도왔으며, 왕자의 신분에도 들에 나가 농사를 지었다. 또한 여름에 홍수로 수백명의 이재민이 발생하자 구제하였으며, 덕을 쌓은 어른이라 하여 적덕공이라고도 불렀다.

처음 연기군 남면 방축리에 있던 건물이 낡아 조선 영조 15년(1739)에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겼다.

현지 안내문편집

조선 정종의 열 번째 아들인 덕천군을 모신 사당이다. 덕천군은 가난한 백성을 정성껏 도왔으며, 왕자의 신분에도 들에 나가 농사를 지었다. 어느해 여름 홍수로 금강이 범람하여 수백명의 이재민이 발생하자 구제하였으며, 덕을 쌓는 어른이라 하여 적덕공이라고도 불렀다.

처음 연기군 남면 방축리에 있던 건물이 낡아 영조 15년(1739)에 지금 있는 위치로 옮겼다.

묘소는 경기도 남한산성 서문밖에 있던 것을 1974년 지금의 위치로 옮겼으며, 신도비는 10손인 이광사가 쓴 것으로 순조 8년(1808)에 세웠다.[3]

각주편집

  1. 세종특별자치시 고시 제2018-284호, 《세종특별자치시 문화재자료 지정구역 추가 지정 고시》, 세종특별자치시장, 2018-10-10
    추가지정사유: 덕천구사우는 조선 정종의 열 번째 아들인 덕천군(1397~1456)을 모신 사당으로, 「시조덕천군사우중수서」(1741)의 기록을 통해 1739년(영조 15)에 연기 방축리에서 현재의 위치로 이건 되었음을 알 수 있음. 이건 당시 재실이 추가적으로 건립되면서 제향공간과 관리영역이 구분된 사역구성이 완성되었고, 영조 15년(1789년)부터 제향과 관리가 함께 이루어지고 있는 장소성과 역사성 등을 볼 때 문화재구역을 추가 지정하여 보존・관리하고자 함.
  2. 세종특별자치시 고시 제2012 - 63호,《세종특별자치시 지정문화재 및 문화재자료 지정 고시》, 세종특별자치시장, 2012-12-31
  3. 현지 안내문 인용

같이 보기편집

참고 자료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