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표

장기표(張基杓, 1945년 12월 27일 ~ )는 대한민국의 사회단체활동가이다.

장기표
張基杓
출생1945년 12월 27일(1945-12-27) (74세)
미 군정 조선 경상남도 밀양군 상남면 기산리
국적대한민국
거주지대한민국 경상남도 김해시 월산로
학력서울대 법학과 학사
경력전국민족민주연합 사무처장
민중당 정책위원장
통합민주당 당무위원
새시대개혁당 대표
민주국민당 최고위원
푸른정치연합 대표
새천년민주당 영등포을 지구당위원장
한국사회민주당 대표
녹색사민당 대표
새정치연대 대표
녹색사회민주당 대표
녹색통일당 상임공동대표
정통민주당 선대위원장
미래통합당 김해을 출마 낙선
배우자조무하
자녀슬하 2녀(장녀 장하원, 차녀 장보원)
종교무종교
정당미래통합당
웹사이트마이고 데이터
보트 비전

생애편집

경상남도 밀양군 상남면 기산리에서 태어나[1], 김해군 이북면 장방리에서 성장하였다. 마산공업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나온 그는 서울대학교 법대 재학시절 단과대 학생회장을 맡아 노동문제에 관심을 가졌다. 1970년 11월 노동운동가 전태일의 분신자살 소식을 접하고 서울대학교 학생장으로 치르겠다고 가족에게 제의했으며, 후에도 계속 노동운동에 지속적 관심을 쏟았다. 이후 유신체제와 군부독재에 대항하는 민주화운동을 계속하여 1972년 서울대생 내란음모 사건을 시작으로 70-80년대에 걸쳐 수차례 복역하였다.

1989년 전국민족민주연합 사무처장을 지냈고, 1990년 재야운동의 제도권 진입을 목표로 이재오, 김문수 등과 함께 민중당을 창당하여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총선거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으며, 이후 재야운동과 거리를 두고 제도권 정계에 진입을 시도하였다.

1995년 서경석, 장을병 등과 개혁신당을 창당한 후 민주당과 합당하여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총선거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하고 탈당하였다. 2000년 홍사덕과 연대를 시도했으나 홍사덕의 한나라당 입당으로 실패했고, 이후 한나라당에서 공천을 받지 못해 탈당한 김윤환, 이기택, 이수성 등의 보수인사와 함께 민주국민당을 창당하여 제16대 국회의원 총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하였다. 2002년에는 당시 집권당인 새천년민주당에 입당하여 서울 영등포구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했고 이후 바로 탈당하였다. 2004년에는 한국노총 주도의 사회민주당의 대표를 맡아 출마했으나, 다시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이후 2006년 3월부터 2006년 6월까지 열린우리당 특임행정위원을 지내다가 사퇴 및 탈당하였고 2007년 9월에서 2007년 12월까지 대통합민주신당 특임행정위원을 지내다가 사퇴 및 탈당, 2012년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녹색사회민주당 대표로서 박세일 교수가 주도하는 가칭 '국민생각'에 참여하였다. 그러다가 결별한후 녹색통일당을 창당한 후 민주통합당 공천탈락자들이 주도하는 정통민주당으로 합당하고 비례대표 1번으로 19대 총선에 출마하였다나 낙선하였다.[2] 그는 정치권 진입을 원하는 세력이라면 보수-중도-진보 등 노선에 상관없이 무조건 끌어모아 신당을 창당하는 행보 관련에 여러 가지 비판도 상존한다. 이부영, 김근태 등 오랜 재야 동지들이 대부분 성공적으로 제도 정치권계에 진입한 데 반해, 20년 넘게 계속 도전중이다.

1998년 pc통신망 나우누리에 '장기표 시사논평'이라는 정치논평 방을 개설하여 운영하였다. 2013년부터 인터넷에 '언론을 바로잡아 세상을 바로잡자'라는 슬로건으로 '뉴스바로'를 창간하여 2015년 현재 발행인 및 편집인으로 있으며, 2014년도엔 중국공산당중앙당교(중앙당교)의 기관지 학습시보의 등위원(鄧郁文) 편집장을 초청하여 토론회 및 강연을 주최하기도 했다. 또한 합리적 진보를 표방하며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 원장, 박범진 전 의원, 주대환 전 민주노동당 정책위 의장 등 33명이 발기인으로 참여한 사회민주주의포럼(사민포럼)도 2014년 12월 '왜 지금 사민주의인가'라는 제목으로 토론회를 개최하였고, 사민포럼은 2015년 상반기 창당을 목표로 삼고 있다. 그런 그는 2020.4.15 총선에서 느닷없이 김해을에 미래통합당 후보로 출마해 낙선했다.

전과편집

  • 폭발물사용음모, 내란음모: 징역 1년 6월, 집행유예 3년 - 1972년 9월 11일 선고[3]
  • 반공법위반, 주민등록법위반, 병역법위반: 징역 2년 6월, 자격정지 2년 6월 - 1979년 12월 29일 선고[3]
  •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위반: 징역 1년 - 1986년 11월 17일 선고[3]
  • 소요, 공문서위조, 위조공문서행사, 국가보안법위반,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위반: 징역 6년, 자격정지 3년 - 1986년 11월 17일 선고[3]
  • 국가보안법위반(기타): 징역 1년, 자격정지 1년 - 1993년 2월 26일 선고[3]

주요 저서편집

  • 1987 우리사랑이란 이름으로 만날때 <형성사>
  • 1987 해방의 논리와 자주사상 <도서출판 친구>
  • 1988 새벽노래 <미래사>
  • 1991 사랑의 정치를 위한 나의구상(전8권) <한길사>
  • 1995 지구촌시대 민족발전전략 <백산서당>
  • 1997 문명의 전환 <미래M&B>
  • 1998 국가파산을 막을 희망의 메시지 - 구국선언 <신문명>
  • 1999 대통령님, 나라팔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신문명>
  • 2001 신문명 국가비전 <신문명> 신문명 경제시론 <신문명>
  • 2004 대통령 대 국민 <신문명>
  • 2006 장기표의 신문명 경제비전 - 한국경제 이래야 산다 <명상>
  • 2007 북한위기의 본질과 올바른 대북정책 <신문명>
  • 2007 신문명 국가비전 증보판 <밀알>
  • 2007 부부사랑, 그 지혜로운 행복 <밀알>
  • 2007 청년의 비전, 청년의 도전 - 청년에게 고함 <밀알>
  • 2008 지못미, 정치! <시대의창>
  • 2009 지못미, 경제! <시대의창>

역대 선거 결과편집

선거명 직책명 대수 정당 득표율 득표수 결과 당락
제14대 총선 국회의원(서울 동작구 갑) 14대 민중당     21.50% 21,181표 3위 낙선
제15대 총선 국회의원(서울 동작구 갑) 15대 통합민주당      19.07% 18,851표 3위 낙선
제16대 총선 국회의원(전국구) 16대 민주국민당   3.7% 695,423표 전국구 3번 낙선 (승계 불능)
8·8 재보궐선거 국회의원(서울 영등포구 을) 16대 새천년민주당      37.7% 14,419표 2위 낙선
제17대 총선 국회의원(서울 동작구 갑) 17대 녹색사민당    4.86% 5,202표 5위 낙선
제19대 총선 국회의원(비례대표) 19대 정통민주당    0.2% 48,624표 비례대표 1번 낙선
제21대 총선 국회의원(경남 김해시 을) 21대 미래통합당     41.61% 60,003표 2위 낙선

논란편집

영원한 재야라는 평가편집

장기표는 영원한 재야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다. 2019년 조선일보 최보식이 만난 사람, 2019년 신동아 7월호에도 그리 나왔다. 하지만 장기표는 1988년 민중당 창당에 참여한 이후 지금까지 모두 7차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다. 그런데도 영원한 재야라는 평가가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나온다. 그러나 국회;의원에 한번도 당선된 적이 없다는 의미로 영원한 재야라는 평가라면 맞는 말이지만 정치권에 발붙이지 않는다는 의미의 재야라면 영원한 재야라는 말은 틀린 말이다.

거액의 민주화 포상금 거절편집

장기표는 민주화운동과 고나련한 거액의 정부 보산금을 거절했다는 기사가 나온다. 일부 기사엔 거절이 아니라 신청하지 않았다고 한다. 5.18 민주유공자 보상금은 피해자로 신청하고 심사하고 피해자가 확인되면 보상금을 지급한다. 그러나 장기표는 스스로 보상금을 신청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거액의 보상금을 거절했다는 건 잘못이다. 특히 장기표는 김대중내란음모사건 당시 체포되지 않고 3년간 도피했기에 구금과 투옥을 하지 않았다. 수형사실이 없으니 보산금을 신청할 자격이 되지 않는다.

변절인가 반정부 투쟁인가편집

장기표는 14대부터 21대가지 총 7차례 국회의원에 출마했다. 출마 정당은 민중당, 통합민주당, 민주국민당, 새천년민주당, 녹색사민당, 정통민주당, 미래통합당이었다. 7차례 출마동안 민준당과 녹색사민당에서부터 통합민주당, 새천년민주당 등 민주당 계열은 물론 21대엔 미래통합당 후보로 김해을에 출마했다. 특히 미래통합당 후보로 출마하게 된 것에 변절이란 주장이 나온다. 그러나 장기표는 변절이 아니라 정권 심판을 위해 미래통합당으로 출마했다고 말했다. 결과는 낙선이었다.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뉴시스 2020년 3월16일
  2. [1]
  3. 김해시선거관리위원회 (2020년 3월 13일). “전과기록증명에 관한 제출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