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 코끼리

전투를 위해 인간이 훈련하고 안내하는 코끼리

전투 코끼리는 군사용으로 사용된 코끼리이다. 주로 인도 문화권이나 고대 지중해 세계에서 이용되어 돌격하여 적을 밟아 잡거나 적전열을 무너뜨리는 것을 주목적으로 했다. 코끼리의 사회는 혈연이 있는 암컷의 무리를 기초로 한 모계 사회이기에 암컷 코끼리는 다른 암컷 코끼리를 향해 가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에, 군용으로는 수컷 코끼리가 이용되었다. 인도 문화권에서는 인도 코끼리가, 카르타고그리스에서의 전투 코끼리로는 현재는 멸종된 북아프리카 코끼리가 사용되었다. 한편 수메르에서도 과거 각각의 문명 지역에 살던 코끼리를 이용한 전투 코끼리가 존재했으나, 메소포타미아의 코끼리는 기원전 850년 경 멸종했으며 황하의 코끼리 역시 춘추시대 말기인 기원전 500년 경 황허 남쪽의 베트남 국경 지역의 종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멸종하였기에 전투 코끼리는 사용되지 않았다.

런던 뉴스에 실린 전투 코끼리 그림

운용 편집

 
히다스페스 전투의 전투 코끼리를 묘사한 모습.

전투 코끼리는 고대 인도에서 처음 사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것이 서방으로 전파되면서 서방의 역사에서도 전투 코끼리가 등장하게 되었다. 아케메네스 왕조에서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마케도니아군을 상대하기 위해 가우가멜라 전투에서 15마리의 코끼리 부대를 투입하였다. 비록 이 전투에서 페르시아군은 패배하였으나 알렉산드로스는 코끼리에 겁을 먹은 나머지 전투 전날 밤 두려움의 신에게 제물을 바치는 의식을 치러야 했으며, 전투에서 승리한 후에도 이에 깊은 인상을 받아 전투에서 사로잡은 15마리의 코끼리를 페르시아의 잔존 영토를 정복하는데 투입하였다. 또 인도를 침공하는 과정에서 알렉산드로스의 마케도니아군은 펀자브 지역의 히다스페스 전투에서 포러스 왕이 투입한 85~100마리 가량의 전투 코끼리 부대를 상대하게 되었다. 비록 해당 전투에서 마케도니아군은 완승을 거두었으나, 이후에 퍼진 인더스 강 너머의 인도 국가들이 수천 마리의 전투 코끼리 부대를 운용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마케도니아군은 겁에 질렸고, 이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인더스 강을 넘어 정복 전쟁을 계속하지 못하게 하는 원인으로 작용했다.

이후의 사례로 가장 유명한 것은 에페이로스피로스 왕이 로마와의 전투에서 동원한 전투 코끼리와 카르타고한니발2차 포에니 전쟁에서 동원한 전투 코끼리의 사례가 있다. 이집트와 카르타고, 누미디아쿠쉬 왕조 등은 북아프리카 코끼리를 사용하였는데, 이들은 서기 2세기 경 멸종된 별도의 아종으로 덩치가 셀레우코스 왕조의 코끼리보다 작았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더욱 남쪽에서는 아프리카의 일부 부족들이 아프리카 코끼리를 길들여 전투용으로 사용하려 한 사례가 있다. 그러나 이들이 인도 코끼리나 북아프리카 코끼리에 비해 큰 덩치를 가지고 있는 이유로 전투에서는 월등한 효과를 발휘했을 것으로 추측되나, 특유의 호전성과 조련 수단의 부족으로 난조를 겪었을 것으로 예상되며, 따라서 해당 코끼리들은 전장에서 널리 사용되지는 못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무적으로 알려진 칭기스칸몽골제국도 유라시아 세계를 정복하는 과정에서 많은 전투 코끼리 부대들과 전쟁을 벌였는데, 그 첫 전쟁은 사마르칸드 공성전에서 벌어진 호라즘 왕조의 중장코끼리병과의 전쟁이었다. 그러나 잔혹한 성향의 몽골군은 알렉산드로스 3세와 완전히 동일한 전술을 펼쳤는데 우선 전투 코끼리 부대를 보자마자 바로 돌격하여 백병전을 펼치기도 하였고, 또한 전투 코끼리병을 둘러싸서 틈을 만든 후 파르티안 샷으로 기수를 공격하였다. 여기서도 몽골군의 전술이 빛을 발했다. 호라즘 왕조의 전투 코끼리부대가 쳐들어오면 퇴각하는 척하면서 몽골군 기병대가 후방에서 공격하고 호라즘 왕조의 코끼리부대 후퇴하면 몽골군 기병대가 추격하며 칼과 활로 기수를 공격하는 전술을 반복하면서 호라즘 왕조의 중장코끼리병은 전멸하고 말았다. 그리고 2번째 전투코끼리 부대와의 전쟁은 칭기스칸의 몽골제국이 페르시아를 정복한 후, 칭기스칸이 전사한 한참 후인 1277년에 이미 몽골제국의 식민지가 된 페르시아에서 태어난 몽골 장군 나스룻딘의 1만 병력의 몽골군 기병대와 미얀마(버마)의 국왕 나라티하파티가 이끈 3천 마리의 전투코끼리 대군과 엔가송갼에서 벌어진다. 이 전쟁에서 몽골군의 군마가 진격하지 않자 군마에서 일제히 내려 코끼리대군을 향해 불화살을 날려 코끼리 기수들이 초토화된다. 그리고 1289년 바모 지역에서 벌어진 전투코끼리 부대와의 3번째 전쟁에서 미얀마(버마) 전투 코끼리부대에게 결정적 타격을 준다. 이 전쟁에서는 코끼리 부대에게 석유 폭탄을 퍼부어 코끼리 부대를 화상계로 전멸시킨다. 그리고 파간 공성전이 이어지는데, 이 전쟁에서 몽골군은 파간 제국(미얀마를 최초로 통일 시킨 제국)을 통째로 멸망시킨다. 1257년 몽골제국은 여전히 정복전쟁을 강행하고 있었는데, 지금까지 호라즘 왕조 같은 중동 국가들이나 파간(미얀마)제국을 정복하여 가져온 전리품인 전투코끼리군대를 양성하여 제 1차 베트남 원정때 이용한다. 이 전투코끼리군대로 베트남군을 전멸시키는데 성공한다.

그후 몽골제국의 계승국을 자처한 티무르는 정복 과정에서 인도의 코끼리 부대와 맞닥뜨린 바 있으며, 이 전투에서 승리한 후 포획한 코끼리를 이용하여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에서 효과적으로 사용하였다. 몽골 제국의 침공 이후 화약 무기가 급속도로 발달하면서 코끼리 부대의 전투용으로서의 실용성은 차츰 떨어져나가 더 이상 전투용으로는 쓰이지 않게 되었지만, 2차세계대전 시절까지 화포 및 각종 보급품을 운반하는 용도로만 계속해서 널리 사용되었다.

전장에서의 용도 편집

전투 코끼리는 흔히 사용되는 운송 및 이동 수단의 용도 외에도 적을 향해 돌격하여 진형을 무너뜨리는 충격력을 발휘하는 용도로 널리 사용되었다. 코끼리는 시속 30km의 속력으로 돌진할 수 있으며, 중기병의 돌격 시와는 달리 보병들의 창을 이용한 방진으로도 돌진을 막는 것이 쉽지 않았다. 이렇게 돌격한 코끼리들은 적을 넘어뜨리고 짓밟거나, 상아와 코를 휘둘러 직접 타격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공격을 받은 적들은 죽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넘어지거나 멀리 나가 떨어지게 되며, 무엇보다도 특히 코끼리를 본 적이 없는 적을 상대로 막대한 공포감을 조성하여 전장을 이탈하여 도주하게 할 수 있었다. 또 코끼리의 덩치와 냄새에 익숙하지 않은 말들 또한 코끼리의 돌격에 겁을 먹게 되어, 쉽게 전선을 이탈하거나 통제 불능 상태에 빠졌다. 그러나 이러한 점은 코끼리를 사용하는 군대에 있어서도 기병과의 연계가 어렵게 만드는 문제를 남기곤 했다. 한편 코끼리의 두꺼운 가죽은 투사 무기에 대한 다른 아군의 보호 용도로도 사용될 수 있었다. 또한 코끼리의 무기에 대한 저항력을 강화하기 위해 전투 코끼리용 갑옷이 제작되어 사용되기도 했으며, 스리랑카와 같은 곳에서는 무거운 철구가 달린 쇠사슬을 몸통에 휘감아 마구 돌게 하는 방법을 사용하기도 하였으며, 16세기 이후에는 컬버린 포와 같은 화포를 코끼리 위에서 사용하기도 했다. 이외에 전투 코끼리를 사용하는 군대의 지휘관들은 전장에서의 시야 확보를 위해 코끼리에 탑승하는 것을 선호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장점을 가지고 있는 코끼리지만, 한편으로 여러 단점도 존재하였다. 앞서 언급된 바와 같이, 코끼리에 익숙하지 않은 말은 쉽게 패닉 상태에 빠지기 때문에 기병과의 동반 사용을 위해서는 군마로 하여금 코끼리에 길들여지게 할 필요가 있었다. 또 코끼리에 대해 잘 아는 적에게는 여러 단점을 노출했는데, 코끼리는 밀집된 장창 방진에는 다가가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었으며, 또한 일정량 이상의 고통을 받거나 조종자들이 사망하면 곧바로 통제불능 상태에 빠져 날뛰게 되어 있었다. 이렇게 날뛰는 코끼리는 오히려 아군을 향해 돌진해 큰 피해를 줄 우려가 있었기에 코끼리 조종자들은 끌과 망치를 휴대한 후 날뛰는 코끼리는 그 척수에 이를 박아 죽여 피해를 줄였다. 한편 갑옷을 입지 않은 코끼리는 투사 무기에 의해 이러한 통제불능 상태에 빠질 우려가 컸으며, 이러한 고대 전투에서의 투창병에 의해 주로 나타났다.

전투 코끼리 부대를 물리친 가장 유명한 사례로는 전장에 돼지를 사용한 사례가 있다. 코끼리는 일반적으며 익숙하지 않은 소리에 민감하여, 돼지의 '꽤액'하는 울음소리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이러한 습성을 이용하여 메가라의 군대에서는 기름을 부은 돼지에 불을 붙인 뒤 돌진해 오는 코끼리들을 향해 풀어놓는 방법을 사용했다. 이들이 코끼리의 대열 사이를 지나가자, 불과 이들의 울음소리에 놀란 코끼리떼는 즉각 날뛰었다고 한다. 이외에도 점차 석궁과 노포, 투석기와 같은 강력한 투사 병기가 등장하면서 코끼리의 사용은 점점 그 효력을 잃게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화약 무기가 등장하자 코끼리는 전장에서의 전투 용도로서의 가치를 거의 잃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