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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필(全鎣弼, 1906년 7월 29일 ~ 1962년 1월 26일)은 대한민국문화재 수집, 보존, 연구가이며 교육가이다. 자는 천뢰(天賚), 호(號)는 간송(澗松), 지산(芝山), 취설재(翠雪齋)이다.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났다. 훈민정음 원본 등의 문화재를 수집하고, 일본으로 유출된 문화재들을 되찾아와 1938년 조선 최초의 근대사립미술관인 보화각을 세웠다. 해방 후 혼란기와 한국전쟁중에 한국의 문화재들을 지켜내었다. 간송 전형필 선생의 사후 보화각은 전형필 선생의 유족들과 지인들에 의해 한국민족미술연구소와 간송미술관으로 개편되었고, 간송미술관에서는 1971년 봄부터 '겸재전'(謙齋展)주제를 시작으로 2014년 가을까지 일년에 2차례씩 무료 일반공개를 하였다. 현재는 간송미술문화재단이 설립되어 더 많은 사람들에게 간송컬렉션을 선보이고자 동대문디자인프라자&파크에서 간송문화전을 진행하고 있다. 문화재청에서는 그의 업적을 기려 2012년 12월 14일 전형필의 가옥을 등록문화재 제521호로 지정하여 지정 관리하고 있고, 2014년 10월 대한민국 금관문화훈장에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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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필
全鎣弼
출생 1906년 7월 29일(1906-07-29)
대한제국 대한제국 한성부 종로방
사망 1962년 1월 26일 (55세)
대한민국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필명 호(號)는 간송(澗松), 지산(芝山), 취설재(翠雪齋), 옥정연재(玉井硏齋)
직업 교육자
문화재 수집가
문화재 보존가
저술가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소속 고고미술동인회 회장
학력 와세다 대학 법학부
활동기간 1929년 ~ 1962년
장르 저술
자녀 전성우(장남), 전영우(차남)

목차

생애편집

1906년 서울의 대부호의 아들로 태어났다. 1926년휘문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29년와세다 대학 법학부를 졸업하였다. 1932년 서울 관훈동의 한남서림(고서, 고서화를 취급하던 서점)을 인수하고, 우리민족 문화재들이 외부로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문화재들을 구입하기 시작한다. 문화재에 보다 큰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휘문고등보통학교 스승이었던 춘곡 고희동독립운동가 위창 오세창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1934년에 서울 성북동에 북단장(北壇莊)을 매입하여 터를 잡고 본격적으로 문화재를 수집했으며, 33세가 되던 1938년에는 자신의 소장품으로 북단장 안에 한국 최초의 사립 박물관보화각(葆華閣)을 세웠다. 1940년 보성고보를 인수하였으며, 1945년에는 1년 동안 보성중학교 교장을 맡았다. 1960년에는 이전부터 그를 돕던 김상기, 김원룡, 최순우, 진홍섭 등과 함께 '고고미술 동인회'를 만들고 《고고미술(考古美術)》이란 동인지를 발간하기도 했다. 현재 한국미술사학회의 전신인 고고미술동인회는 한국 최초의 미술사학회이다.

1962년 5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문화포장국민훈장 동백장, 대한민국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 1966년 보화각은 전형필 선생의 수집품들을 연구정리하기 위해 한국민족미술연구소로 개편되었고 연구소의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1971년부터 간송미술관의 이름으로 봄과 가을 일년에 두차례 일반공개를 하고 있다.

일화편집

훈민정음 해례본에 관한 일화와 존 개츠비의 소장품인 고려청자의 수집에 대한 일화가 유명하다. 1942년 경상북도 안동에서 소재되어있던 훈민정음 해례본은 원래 광산 김씨 종가의 긍구당 서고에 보관되어 오던 광산김씨 문중의 가보였다고 한다. 세종이 광산김씨 문중에 여진정벌의 공로를 치하하는 의미로 내린 서책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당시 이 집안의 사위였던 이용준이 매월당집 등을 비롯하여 훈민정음 해례본을 몰래 빼돌려 안동의 자택에서 보관하고 있다가 김태준을 통해 전형필 선생에게 훈민정음 해례본만 만원에 판매하였다. 최초 판매가로 천원을 제시하였으나 원래 문화재의 가치를 정확히 치르는 것으로 유명했던 전형필은 금액이 너무 적다고 생각하여 거간 노릇을 한 김태준에게 천원을, 그리고 훈민정음 해례본의 가격으로 만원을 치렀다.

당시 천원이면 좋은 기와집 한채를 살 수 있었다고 한다. 이후 학계에 훈민정음 해례본이 발견되면서 학자들 사이에 논란이 일었던 한글 창제 원리가 이 훈민정음 해례본에 의해 밝혀졌다. 후에 이 훈민정음 해례본1962년 12월 20일 대한민국국보 제 70호로 지정되었다. 이후 1997년 10월에 대한민국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기도 하였다. 거간 노릇은 한 김태준과 이용준은 사회주의자로, 판매한 돈을 사회주의 운동에 사용했다고 전해지며 광복 후 김태준은 일련의 사건으로 체포되어 사형되었고, 이용준은 월북하였다고 한다.

존 개츠비로부터 사들인 국보고려청자 20점은 모두 사십만원에 사들였는데 원래 제시한 가격은 오십만원 이상이었으나 전형필 선생의 문화재 사랑에 감동하여 판매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한국전쟁 중 인민군들이 전형필의 소장품들을 모두 가져가려하자 포장을 맡아하던 소전 손재형과 혜곡 최순우가 이 핑계 저 핑계로 못가져가도록 하였고 뜻대로 되지 않자 일부러 계단에서 굴러 다리를 부러뜨리기 까지 하였다고 한다. 전형필 또한 피난을 가지 않고 보화각 근처 빈 집에 숨어 소장품이 훼손될까 노심초사하였다 한다.

경력편집

  • 1906년 7월 29일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4가 112번지에서 중추원의관 전영기와 밀양 박씨 사이의 차남으로 출생, 본관은 정선
  • 1926년 휘문고등보통학교 졸업
  • 1930년 일본와세다대학 법과 졸업 / 귀국 후 춘곡 고희동 선생의 소개로 위창 오세창 선생과 교유, 문화재 수집시장
  • 1934년 성북동 소재 북단장 개설
  • 1938년 북단장 소재 사립미술관 보화각 설립
  • 1940년 동성학원 설립
  • 1945년 보성중학교장 겸임
  • 1974년 고적보존위원회 위원으로 피촉
  • 1954년 문화재보존위원회 제1분과위원
  • 1960년 고고미술 발간
  • 1962년 1월 26일 서거

수상편집

  • 1962년 대한민국 문화포장 추서
  • 1964년 대한민국 문화훈장 동백장 추서
  • 2014년 대한민국 금관문화훈장 추서

함께 보기편집

참고 자료편집

  • 천재 배상원, 송현준 저, 현준사
  • 천재 배상원을 다시 찾은 우리 문화유산 이야기, 샘터
  • 지식채널e - 바보같은 남자, E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