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사룡(鄭士龍, 1491년 12월 19일 ~ 1570년 또는 1573년 10월 2일)은 조선 중종, 명종, 선조대의 문신이자, 작가, 문인, 시인이다. 자(字)는 운경(雲卿)이고 호는 호음(湖陰)이며, 본관은 동래(東萊)이다. 과거 급제 후 관직은 보국숭록대부 영중추부사에 이르렀다. 영의정을 지낸 정광필의 조카이고, 세조대의 공신 정난종의 손자이다. 그러나 그는 김종직의 재전제자인 용재 이행의 문인이다.

그 또한 문장력이 있어 그의 문하생들 중에는 어숙권(魚叔權), 노서린(盧瑞獜), 권응인(權應仁), 이붕상(李鵬翔), 임기(林芑), 이량 등이 배출되었다. 특히 과거 시험의 시험감독관으로 있을 때 자신의 제자 이량을 부정하게 합격시킨 일과, 1558년의 별시문과 때에는 신사헌의 뇌물을 받고 시험 전에 답을 미리 알려준 일로 물의가 되기도 했다. 제자인 이량이 왕실의 외척으로 전권을 휘두르다가 1563년 사림을 제거하려 했으며, 이로 인해 심의겸, 기대항 등의 탄핵을 받고 몰락할 때 그 역시 연좌되어 몰락했지만 선조 즉위 후 복직하여 판중추부사, 영중추부사 등을 역임했다. 1470년에 사망했으나, 미수 허목에 의하면 1573년(선조 6)에 영중추부사로 사망했다 한다.

저서편집

  • 천사일로일기 (天使一路日記)
  • 조천록 (朝天錄)
  • 호음잡고 (湖陰雜稿)

기타편집

그의 집안은 훈구 공신이었지만 그는 김종직의 재전제자인 용재 이행의 문하에서 수학하여 사림파에 속했고, 그 역시 어숙권(魚叔權), 노서린(盧瑞獜), 권응인(權應仁), 이붕상(李鵬翔), 임기(林芑), 이량 등의 문인들을 다수 배출해냈다.

관련 항목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