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사룡

정사룡(鄭士龍, 1491년 12월 19일 ~ 1570년 또는 1573년 10월 2일)은 조선 중종, 명종, 선조대의 문신이자, 작가, 문인, 시인이다. 자(字)는 운경(雲卿)이고 호는 호음(湖陰)이며, 본관은 동래(東萊)이다. 과거 급제 후 관직은 보국숭록대부 영중추부사에 이르렀다. 영의정을 지낸 정광필의 조카이고, 세조대의 공신 정난종의 손자이다. 김종직의 재전제자인 용재 이행의 문인이다.

생애편집

경기도 양주군 출신이다. 1509년(중종 4)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1514년(중종 9) 사가독서(賜暇讀書)하였다. 1516년(중종 11) 문과 중시에 장원하고 사간, 부제학을 역임한 후 1534년(중종 29) 동지사(冬至使)로 명나라에 사행을 다녀왔다. 이후 예조판서, 공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1] 문장력이 있어 그의 문하생들 중에는 어숙권(魚叔權), 노서린(盧瑞獜), 권응인(權應仁), 이붕상(李鵬翔), 임기(林芑), 이량 등이 배출되었다. 특히 과거 시험의 시험감독관으로 있을 때 자신의 제자 이량을 부정하게 합격시킨 일과, 1558년의 별시문과 때에는 신사헌의 뇌물을 받고 시험 전에 답을 미리 알려준 일로 물의가 되기도 했다. 제자인 이량이 왕실의 외척으로 전권을 휘두르다가 1563년 사림을 제거하려 했으며, 이로 인해 심의겸, 기대항 등의 탄핵을 받고 몰락할 때 그 역시 연좌되어 몰락했지만 선조 즉위 후 복직하여 판중추부사, 영중추부사 등을 역임했다. 1470년에 사망했으나, 미수 허목에 의하면 1573년(선조 6)에 영중추부사로 사망했다 한다.

문학 세계편집

해동강서시파(海東江西詩派)의 일원으로 한시사에 이름을 남겼는데, 말을 치밀하게 다듬어 기개와 풍모가 있으며, 기이한 문구를 얻으려는 시풍을 장기로 삼았다. 노수신(盧守愼), 황정욱(黃廷彧)과 함께 ‘호소지(湖蘇芝)’, ‘관각삼걸(館閣三傑)’로 불린다. 정사룡(鄭士龍)의 시는 서곤체(西崑體)에 근원을 두었는데, 서곤체는 만당(晩唐) 이상은(李商隱)의 시를 추숭하는 유파이다. 특히, 칠언율시에 뛰어나 당시 문단에서 그와 신광한(申光漢)을 한시의 쌍벽으로 꼽았다.[2]

저서편집

  • 《천사일로일기》(天使一路日記)
  • 《조천록》(朝天錄)
  • 《호음잡고》(湖陰雜稿)

기타편집

그의 집안은 훈구 공신이었지만 그는 김종직의 재전제자인 용재 이행의 문하에서 수학하여 사림파에 속했고, 그 역시 어숙권(魚叔權), 노서린(盧瑞獜), 권응인(權應仁), 이붕상(李鵬翔), 임기(林芑), 이량 등의 문인들을 다수 배출해냈다.

관련 항목편집

각주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