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왕후

조선 영조의 왕비

정성왕후 서씨(貞聖王后 徐氏, 1693년 1월 12일 (1692년 음력 12월 7일) ~ 1757년 4월 3일 (음력 2월 15일)는 조선의 제21대 왕 영조의 정비(正妃)이며 조선의 역대 왕비 중 왕비 재임 기간이 가장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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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왕후
貞聖王后
정성왕후의 금보
정성왕후의 금보
지위
조선의 세제빈
재위 1721년 9월 26일 ~ 1724년 8월 30일 (음력)
조선 영조의 왕비
재위 1724년 8월 30일 - 1757년 2월 15일 (음력)
전임 선의왕후 어씨
후임 정순왕후 김씨
이름
별호 달성군부인(達城郡夫人)
존호 혜경장신강선(惠敬莊愼康宣)
휘호 공익인휘소헌원렬단목장화
(恭翼仁徽昭獻元烈端穆章和)
시호 정성(貞聖)
전호 휘령전(徽寧殿)
신상정보
출생일 1692년 12월 7일(1692-12-07) (음력)
출생지 조선 한성부 가회방 사저
사망일 1757년 2월 15일(1757-02-15)(64세) (음력)
사망지 조선 한성부 창덕궁 관리각
능묘 홍릉(弘陵, 서오릉)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용두동 475-99
가문 대구 서씨
부친 달성부원군 서종제
모친 잠성부부인 우봉 이씨
배우자 영조
자녀 없음

정식시호는 혜경장신강선공익인휘소헌원렬단목장화정성왕후(惠敬莊愼康宣恭翼仁徽昭獻元烈端穆章和貞聖王后)이다. 본관은 대구. 달성부원군(達城府院君) 서종제와 잠성부부인(岑城府夫人) 우봉 이씨(牛峰 李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생애편집

1692년 음력 12월 7일 술시에 가회방 사제에서 태어났다. 1704년(숙종 30년), 연잉군(延仍君, 훗날의 영조)과 길례를 행하고 달성군부인(達城郡夫人)으로 봉해졌다.

혼인 첫날 밤 연잉군이 그의 손을 보고는 왜 이리 곱냐고 물어보자 고생을 안 한 덕에 손에 물을 묻히지 않아 그리하였다고 대답하니 연잉군이 자신의 어머니인 숙빈 최씨를 깔본 것으로 간주하고 이후로 찾지 않았다는 일화가 전한다. 1721년, 연잉군이 왕세제(王世弟)로 책봉되자 세제빈(世弟嬪)이 되었으며 1724년, 경종이 승하하고 왕세제인 연잉군이 조선의 21대 국왕(國王)으로 즉위하자 왕비(王妃)로 책봉되었다.

어질고 너그러운 성품을 가졌다고 전해지며, 생전에 정빈 이씨 소생인 효장세자영빈 이씨 소생인 사도세자를 친아들처럼 아꼈다.

사후편집

1757년 창덕궁(昌德宮)의 대조전(大造殿)에서 64세로 시어머니인 인원왕후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능은 경기도 고양시서오릉 내에 위치한 홍릉이다.

1757년, 64세의 나이로 정성왕후가 승하하자 영조는 정성왕후의 능을 아버지인 숙종의 명릉(明陵) 근처에 만들고 훗날 자신이 정성왕후의 옆에 묻히기 위해 옆자리를 비워놓았다. 그러나 1776년, 영조가 승하한 뒤 손자인 정조는 당시 왕대비(王大妃)였던 영조의 계비인 정순왕후를 의식하여 현재의 동구릉 위치에 영조와 정순왕후의 무덤인 원릉을 조성하였고 결국 정성왕후는 옆자리가 비워진 채 홍릉에 홀로 남겨지게 되었다.

1740년, 혜경(惠敬)이라는 존호가 올려진 뒤 생전에 장신(莊愼), 강선(康宣) 등의 존호가 올려졌고 승하 이후인 1772년에는 공익(恭翼)의 존호가 추상되었으며 인휘(仁徽), 소헌(昭獻)이 다시금 추상되어 혜경장신강선공익인휘소헌(惠敬莊愼康宣恭翼仁徽昭獻)의 존호를 가지게 되었다. 1778년, 단목장화(端穆章和)의 존호가 추가되었다.

가족 관계편집

정성왕후가 등장하는 작품편집

TV 드라마편집

영화편집

전임
선의왕후
조선 역대 왕후
1724년 ~ 1757년
후임
정순왕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