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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종(丁若鍾, 1760년 ~ 1801년 4월 8일)은 조선 정조 때의 학자이며, 로마 가톨릭교회 순교자이다. 본관은 나주, 세례명아우구스티노이다.

생애편집

정약용의 셋째 형이기도 한 그는 이익 밑에서 성리학을 공부했다. 한때는 도교를 연구하기도 했지만 1786년에 정약전의 권유로 로마 가톨릭교회 세례를 받으면서 '아우구스티노'라는 세례명을 받게 된다. 1791년에 일어난 신해박해를 계기로 정약전, 정약용 형제가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이탈했지만 정약전은 로마 가톨릭교회 신자로 남게 된다.

1795년에는 이승훈과 함께 청나라 출신의 로마 가톨릭교회 신부였던 주문모를 맞아들였고, 권일신·이덕조 등과 신앙 실천 운동에 가담하여 인습 타파와 계급 타파의 사회 운동을 촉진하며 천주교 전도에 힘썼다.[1] 또한 주문모 신부가 로마 가톨릭교회의 교리 연구, 전교 활성화를 위해 결성한 평신도 단체인 명도회(明道會)의 회장을 역임했다.

1799년에는 서울에서 한국 최초의 천주교 회장이 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전교하는 데 큰 구실을 했다. 특히 한문본 교리책에서 중요한 것만을 뽑아, 누구나 알기 쉽도록 한국어로 《주교요지》(主敎要旨)라는 천주교 교리서를 지어, 전교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2]

1801년 2월에 《성교전서》(聖敎全書)를 집필하던 도중에 일어난 신유박해의 여파로 인해 체포되었다. 정약종의 아들인 정철상은 서소문 밖에서 참수당하면서 순교하였으며, 정약종도 이승훈·최필공·최창현 등과 함께 서문 밖에서 참수당하면서 순교하였다.[1] 2014년 8월 16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을 방문하였을 때에 시복되었다.

가계편집

  • 조부: 정지해(丁志諧)
  • 조모: 풍산 홍씨 홍길보(洪吉輔)의 딸
    • 아버지: 정재원(丁載遠)
    • 전모 : 의령 남씨 남하덕(南夏德)의 딸
      • 이복 형님 : 정약현(丁若鉉)
    • 생모: 해남 윤씨 윤덕렬(尹德烈)의 딸 윤소온(尹小溫)
    • 서모 : 김씨
      • 이복 동생 : 정약횡(丁若鐄)
  • 처 : 경주 최씨(慶州 崔氏)
    • 딸 : 달성 배씨 배윤문(裵允文)에 출가
  • 처 : 한산 이씨 이수정(李秀廷)의 딸
    • 아들 : 정철상(丁哲祥), 세례명은 가롤로. 1801년 순교. 감옥에 갇힌 아버지를 돌봄.
  • 처 : 유소사(柳召史), 세례명은 체칠리아. 1839년 순교.

정약종이 등장한 작품편집

각주편집

  1.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정약종
  2. 원 헥톨 (1998년). 《한국신학》. 원흥문화사. 53쪽쪽. 

외부 링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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