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鄭裕, 1503년 ~ 1566년)는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본관은 온양. 자는 공작(公綽), 호는 양진당(養眞堂)이다.

생애 편집

충북출신으로 통진현감(通津縣監) 정수강(鄭壽綱)의 아들로 태어났다. 1537년 식년문과(式年文科)에 병과로 급제한 뒤, 1538년 탁영시(擢英試)에 병과로 발탁되었다. 1546년 사인(舍人)을 하였으며, 춘추관의 기사관(記事官)으로 천거되어 《중종실록》 및 《인종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1549년 사간원의 사간(司諫)·의정부의 검상(檢詳)·대호군(大護軍)을 거쳐, 1551년 홍문관의 교리(校理)가 되어 강원도암행어사로 나갔다.

그 뒤 부응교(副應敎)·전한(典翰)·직제학(直提學)·부제학(副提學)을 역임하였으며, 1554년 사간원의 대사간에 오른 뒤 동지사(冬至使)에 임명되어 사신으로 명나라에 가기도 하였다.

1555년 사헌부대사헌으로 승진했으며, 이후 한성부우윤·황해도 관찰사를 지낸 뒤 병을 얻어 관직을 사임하였다. 1566년 졸하였다.

사후 편집

좌찬성·판의금부사로 증직되었다. 정유의 묘소는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하동에 위치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