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병(鄭泰炳, 1916년 8월 15일 ~ ?)은 일제시대, 대한민국의 동화작가, 시인이다. 호는 우정(友汀).[1]

1916년 8월 15일 전라남도 영광군 영광면 백학리 39번지에서 부친 정동안, 모친 김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영광보통학교를 졸업까지 했으나 부친이 일찍 돌아가는 바람에 상급학교로 못 올라갔다. 이를 안타까이 여긴 숙부 정동희의 덕을 봐서 영광공립보습학교를 다녀 1930년 2월 졸업했다. 졸업 후에는 영광에서 풀잎사라는 서점을 열었다. 23살 때 이른바 영광공산당사건으로 시인 조운, 매형 위계후와 함께 경찰에 끌려갔다 몇 달간 구류되었으나 치안유지법위반 혐의 없음으로 1938년 5월 16일 풀려났다. 이후로도 노 풀잎사를 경영하고 또한 여러 어린이 잡지를 읽으며 동요, 동화 습작에 열심했다.[1]

1939년 《매일신보》 신춘문예 현상공모에 1등으로 당선되었고, 이때부로 여러 자작한 동화를 발표하기 시작했다. 1941년 박세보와 결혼했다. 슬하에 일남이녀. 결혼을 하여 가계를 꾸려나가고자 영광읍사무소에 근무했다.[1]

1946년 4월 광주의 호남신문사에서 지방부장으로 발령받아 근무했다. 그러나 동년 8월 18일 군정법령을 위반한 혐의로 신문은 필화를 당하고 그 서슬에 정태병도 휘말려 연행의 곤욕을 치렀다. 필화사건 후로 상경하여 서울의 신문사에 근무하였다고 하는데, 언론인 명부에서는 기록이 없고 다만 문학단체에서 활동한 것만 확인된다. 소년운동자 제2차 간담회의 〈조선소년운동의 금후 전개와 지도 단체조직〉 및 〈어린이날〉 준비 등의 논의 자리에서 조선 소년지도자협의 조직준비위원으로 피임되었다. 또 조선문학가동맹 아동문학과 위원을 맡기도 했다. 조선문학가동맹 전남지부 창설 때 단체의 대표로서 광주로 내려오기도 했다. 소년잡지 《새동무》의 동화 집필진이 되고, 《아동문학》 창간호에 〈아동문화운동의 새로운 전망〉을 기고키도 했다.[1]

1950년 한국전쟁 발발 이후 전황을 살피러 밖에 나갔다가 실종되었다.[1]

각주 편집

  1. 《정태병 전집》. 소명출판. 117-12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