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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회열(鄭會烈, 1968년 10월 9일 ~ )는 전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의 포수이자, 전 KBO 리그 KIA 타이거즈의 수석코치이다.

정회열
Jeong Hoi-Yeol
기본 정보
국적 대한민국
생년월일 1968년 10월 9일(1968-10-09) (50세)
출신지 대한민국 광주광역시
신장 178 cm
체중 89 kg
선수 정보
투구·타석 우투우타
수비 위치 포수
프로 입단 연도 1990년
드래프트 순위 1990년 1차 1순위 (해태 타이거즈)
첫 출장 KBO / 1990년 4월 7일
광주빙그레
마지막 경기 KBO / 1999년 10월 20일
대구롯데
경력

선수 경력

코치 경력

프런트 경력

감독 경력


목차

선수 시절편집

해태 타이거즈 시절편집

1990년 해태 타이거즈에 1차 1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당시 해태에는 장채근이 주전으로 버티고 있어서 주로 백업으로 활약했으며, 가끔 우익수 대수비로도 나갔다. 과거에는 양용모 같이 대놓고 도루하면서 포수를 안 하는 게 나았을 선수도 있었지만, 최근에는 프로 1군에서 포수를 보는 선수 중에 기타 포지션으로 나가는 경우가 거의 없으므로 포수 치고는 주력도 나쁘지 않고 나름 야구 센스가 뛰어났다. 1993년에 장채근의 뒤를 이어 주전 포수로 자리잡는 듯 했지만, 다음 해 시즌 막판 새끼손가락 부상을 당하면서 졸지에 시즌 아웃됐고 이로 인해 1995년에는 8경기 밖에 뛰지 못했고, 그 공백은 1994년 시즌 중 쌍방울 레이더스에서 이적한 최해식이 지켰다. 1996년에는 어느 정도 부상에서 회복되며 최해식의 백업으로 역할을 톡톡히 했으나, 그 해 초 하와이 전지훈련 때 송유석, 이순철, 조계현, 이건열 등과 항명사건의 주범으로 찍혀 다음 해인 1997년에는 고작 11경기밖에 출전하지 못했다.

삼성 라이온즈 시절편집

1993년에는 .275를 기록하면서 규정 타석을 찍은 해태 타자 중 이종범에 이어 2위를 기록하기도 했지만 오랜 시간 동안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고, 1997년 시즌을 마치고 해태에서 방출된 후 이듬해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했다. 그러나 당시 삼성 구단은 김영진의 스트라이크 낫아웃 사건 때문에 그 대체 요원를 찾기 위해 여기저기서 포수를 영입하면서 포수 자원이 차고 넘쳤다. 때문에 삼성에서도 주전을 차지하지 못했고 결국 1999년에 은퇴했다.

야구선수 은퇴 후편집

SK 와이번스, 한화 이글스, KIA 타이거즈, 삼성 라이온즈를 거치면서 주로 배터리코치로 활동하였고, 특히 친정팀 KIA 타이거즈에서는 스카우트, 2군 감독, 수석코치 등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등번호편집

  • '25' (1990년 ~ 1997년, 1999년)
  • '46' (1998년)

출신 학교편집

통산 기록편집

연도 팀명 포지션 타율 경기 타수 득점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루타 타점 도루 도실 볼넷 사구 삼진 병살 실책
1990 해태 포수 0.257 74 202 19 52 10 1 3 73 26 1 4 12 1 22 4 4
1991 0.238 89 193 24 46 6 1 6 72 26 2 3 24 1 27 7 1
1992 0.276 97 214 28 59 10 1 7 92 46 3 1 13 6 31 9 7
1993 0.275 117 345 33 95 14 1 7 132 35 0 4 16 5 41 11 9
1994 0.236 80 271 22 64 8 0 8 96 34 0 0 9 4 32 6 6
1995 0.143 8 14 0 2 1 0 0 3 0 0 0 0 0 2 1 1
1996 0.184 59 103 12 19 4 0 3 32 11 0 1 16 3 24 2 0
1997 0.000 11 9 0 0 0 0 0 0 0 0 0 0 1 3 0 1
1998 삼성 0.262 39 61 2 16 2 0 0 18 8 0 0 5 1 13 2 1
1999 0.180 47 89 6 16 3 0 2 25 14 1 2 5 2 21 3 2
통산 10시즌 포수 0.246 621 1501 146 369 58 4 36 543 200 7 15 100 24 216 45 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