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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북군(濟北郡)은 중국의 옛 군급 행정 구역이다. 군국제 시행 중에는 제북국(濟北國)이기도 했다.

연혁편집

임치군·교동군 등과 함께 진나라제나라를 멸하고 옛 제나라 땅에 세운 군이다. 진나라에 박양군이 있었냐 없었냐에 따라 제북군의 추정 권역이 달라져서, 박양군이 없었다고 볼 경우 치소는 박양(博陽: 지금의 타이안시)으로 보고,[1] 있었다고 볼 경우에는 노(盧: 지금의 창칭구)로 본다.[2] 속현은 노·낙릉(樂陵)·시(蓍)·부양(浮陽)·고력(高櫟)·천동(千童)·격(鬲)·탑음(漯陰)·평원(平原)이 있었다.[3]

진나라 말기에는 옛 제나라 왕족 전안이 이곳에서 할거했다. 기원전 206년, 항우가 진나라를 멸하고 중국 각지에 제후를 봉하면서, 옛 제나라의 중심지를 장악하고 제나라를 부활했으며 항우와 사이가 나쁜 전영 일족을 견제하기 위해 전안을 왕으로 삼고 제북군을 제북나라로 바꿨다. 서울은 박양에 뒀다. 전영이 전안을 쳐죽이면서 제북나라는 망하고 제북군은 제나라의 일부가 됐다.[4] 한신이 제나라를 무찌르고 제나라 왕이 됐으나,[5] 전한 고조가 고조 5년(기원전 202년)에 한신을 초나라로 옮겨 봉하고 제나라를 폐하면서 제북군도 다른 제나라의 군현들과 함께 한나라의 직할지에 들어갔다. 고조 6년(기원전 201년)에 고조의 서장자 제도혜왕을 왕으로 삼아 제나라를 복국하면서 제북군은 다시 제나라의 관할 아래로 들어갔다.[6]

이후 여씨를 타도하는 데 공을 세웠으나, 다음 황제 자리를 노린 제애왕과 그 아우 주허후 유장·동모후 유흥거를 견제하기 위해 전한 문제는 제나라 영토 일부를 갈라냈고, 제북군은 이 과정에서 제북나라로 독립돼 유흥거의 왕국이 됐다.[7] 한편 여씨가 제나라에서 뺏어 만든 제천나라가 폐지되면서 그 영역도 제북나라에서 관할했다.[6] 제북왕이 된 유흥거는 이에 반발해 문제 3년(기원전 178년)에 반란을 일으켰으나 실패해 자결했고, 제북나라는 다시 폐지돼 제북군이 돼 한나라의 직할지에 들어갔다.[8]

기원전 165년에 제문왕이 후사 없이 죽자 조정에서는 제나라를 폐해 제북군 외의 다른 옛 제나라의 군현들도 일거에 조정의 관할하에 들어갔다. 그러나 기원전 164년, 조정에서는 낭야군만을 조정의 직할지에 남겨 두고 대신 일곱 제후왕국을 세워 옛 제나라 영역에 강대한 제후국이 생기는 것을 막았다.[6] 제북군은 다시 제북나라가 됐고, 제도혜왕의 아들 안도후 유지가 새 왕이 됐다.[9] 옛 제천군 영역은 제남나라로 떨어져 나갔다.[6] 기원전 154년, 오초칠국의 난 때 유지는 반란에 가담하지 않아 치천나라로 옮겨졌고[10] 대신에 오나라의 회유에 끝내 응하지 않은 형산유발이 옮겨 와 제북정왕이 됐다.[11] 한편 이때 제북군을 잘라내 평원군을 새로 만들고 한나라의 직할지로 삼아 제북나라의 판도를 줄였다.[6] 이후 제북정왕의 아들 제북식왕 유호무제봉선을 위해 태산 일대를 바쳤고, 이때 한나라는 제북나라에서 취한 땅을 바탕으로 태산군을 신설한 것으로 보인다.[12][13] 기원전 87년, 제북정왕의 손자 유관이 죄를 지어 자살하면서 제북정왕 왕가가 3대로 끝났을 뿐만 아니라, 제북나라의 관할 영역을 모조리 태산군에 편입하면서 제북이라는 행정 구역 자체가 폐지됐다.[14]

후한 화제 영원 2년(90년) 5월 경술일, 여러 제후왕들을 봉하면서 태산군을 분할해 제북국을 부활하고 화제의 아우 제북혜왕 유수를 제북왕으로 삼았다.[15] 연주에 속했으며, 5현, 4만 5689호, 23만 5897명을 관할했다.[16]

이름 종류 비고
노(盧) 평음성, 방문, 경자산, 오산, 청정이 있다.
이구(蛇丘) 수향, 하환향, 철향성이 있다.
성(成)
치평(茌平) 원래는 동군 소속이었다.
강(剛)

각주편집

  1. 周振鹤 (2006년 6월). 《汉书地理志汇释》. 合肥市回龙桥路1号: 安徽教育出版社. 212쪽. ISBN 7-5336-4757-2. 
  2. 后晓荣 (2009년 1월 1일). 《秦代政区地理》. 北京市东城区先晓胡同10号: 社会科学文献出版社. 105 ~ 106쪽. ISBN 9787509705704. 
  3. 后晓荣 (2009년 1월 1일). 《秦代政区地理》. 北京市东城区先晓胡同10号: 社会科学文献出版社. 282 ~ 285쪽. ISBN 9787509705704. 
  4. 이용일, "항우의 18제후왕 분봉의 성격에 관하여", 中國史硏究/7, 1999., 1-41, 중국사학회
  5. 사마천: 《사기》 권8 고조본기. 韓信已破齊, 使人言曰 :“齊邊楚, 權輕, 不為假王, 恐不能安齊.”漢王欲攻之. 留侯曰 :“不如因而立之,使自爲守” 乃遣張良操印綬立韓信爲齊王.
  6. 南英珠, "漢初 郡國制와 琅邪郡의 정치적 위상", 중국고중세사연구/28, 2012., 63-92, 중국고중세사학회
  7. 반고: 《한서》 권38 고오왕전. 始誅諸呂時, 朱虛侯章功尤大, 大臣許盡以趙地王章, 盡以梁地王興居. 及文帝立, 聞朱虛, 東牟之初欲立齊王, 故黜其功. 二年, 王諸子, 乃割齊二郡以王章, 興居. 章, 興居意自以失職奪功,
  8. 위와 같음. 而匈奴大入邊, 漢多發兵, 丞相灌嬰將擊之, 文帝親幸太原. 興居以為天子自擊胡, 遂發兵反. 上聞之, 罷兵歸長安, 使棘蒲侯柴將軍擊破, 虜濟北王. 王自殺, 國除.
  9. 반고, 전게서, 濟北王志以安都侯立
  10. 반고, 전게서, 濟北王志,吳楚反時初亦與通謀,後堅守不發兵,故得不誅,徙王菑川。
  11. 반고, 전게서, 권44 회남형산제북왕전. 吳使者至廬江,廬江王不應,而往來使越;至衡山,衡山王堅守無二心。孝景四年,吳楚已破,衡山王朝,上以為貞信,迺勞苦之曰:「南方卑溼。」徙王王於濟北以襃之。
  12. 사마천: 《사기》 권28 봉선서 : 於是濟北王以為天子且封禪,乃上書獻太山及其旁邑,天子以他縣償之。 중국어 위키문헌에 이 글과 관련된 원문이 있습니다. 사기 권28 봉선서
  13. 周振學. 《西汉政区地理》 [서한정구지리]. 人民出版社. 
  14. 반고, 전게서, 濟北貞王勃者,景帝四年徙。徙二年,因前王衡山,凡十四年薨。子式王胡嗣,五十四年薨。子寬嗣。十二年,寬坐與父式王后光、姬孝兒姦,誖人倫,又祠祭祝詛上,有司請誅。上遣大鴻臚利召王,王以刃自剄死。國除為北安縣,屬泰山郡。
  15. 범엽: 《후한서》 권4 제기제4. 夏五月庚戌,分太山為濟北國,分樂成、涿郡、勃海為河閒國。丙辰,封皇弟壽為濟北王,開為河閒王,淑為城陽王,紹封故淮陽王昞子側為常山王。
  16. 사마표: 《속한서》 지리지 권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