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포레스탈
제임스 빈센트 포레스탈(James Vincent Forrestal, 1892년 2월 15일 ~ 1949년 5월 22일)은 국방부 산하가 아닌 해군부의 마지막 미국 해군장관이자 초대 미국 국방부 장관이다.[1]
제임스 포레스탈
James Vincent Forrestal | |
---|---|
미국의 1대 국방부 장관 | |
임기 | 1947년 9월 17일~1949년 3월 28일 |
전임 | 초대 |
후임 | 루이스 A. 존슨 |
대통령 | 해리 S. 트루먼 |
미국의 48대 해군장관 | |
임기 | 1944년 5월 19일~1947년 9월 17일 |
전임 | 프랭크 녹스 |
후임 | 존 L. 설리번 |
대통령 | |
신상정보 | |
출생일 | 1892년 2월 15일 |
출생지 | 미국 뉴욕주 머티완 |
사망일 | 1949년 5월 22일 | (57세)
사망지 | 미국 메릴랜드주 베세즈다 |
포레스탈은 중산층 아일랜드 가톨릭 가정에서 태어났다. 월 스트리트에서 금융가로 성공한 포레스탈은 1940년에 미 해군차관이 되었다. 1944년 4월 프랭크 녹스 해군장관이 사망하자 그 후임으로 프랭클린 D. 루스벨트 행정부의 해군장관에 취임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1947년 해리 S. 트루먼 대통령은 포레스탈은 새 국방부의 초대 장관으로 임명했다.
포레스탈은 트루먼 행정부의 대표적인 반공주의자로, 조지 마셜 국무장관과 함께 미국의 이스라엘 건국 지원에 반대한 인물이기도 하다. 이스라엘에 대한 지원이 중요한 석유 생산지이자 동맹인 아랍 국가들을 소외시킬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포레스탈은 항공모함을 중심으로 한 항모전단(Carrier Battle Group)을 중시했다. 해군의 이익이 침해될 것을 우려한 포레스탈은 처음에는 국방부 창설에 반대하였으나, 오히려 국방부 장관에 임명되면서 트루먼 대통령과 종종 대립했다. 사임 후 포레스탈의 정신 건강은 우울증 치료를 받을 정도로 급격히 악화되었다. 베데스다 해군병원 (현 월터리드 국립 군의료센터에 입원해있던 포레스탈은 16층 창문에서 떨어져 입은 부상으로 사망했다.
1954년 미 해군의 새 항공모함인 USS 포레스탈과 미국 에너지부 본부가 소재한 제임스 V. 포레스탈 빌딩이 그를 기려 명명되었다. 미국 해군사관학교의 포레스탈 강의와 그의 모교인 프린스턴 대학의 제임스 포레스탈 캠퍼스 또한 그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각주
편집- ↑ “James V. Forrestal – Harry S. Truman Administration”. 《Office of the Secretary of Defense – Historical Office》.
제1대 미국 국방부 장관 1947년 9월 17일~1949년 3월 28일 |
후임 루이스 아서 존슨 |